追憶の涙-扇ひろ子 作詞 関沢新一 作曲 市川昭介
一 二人一緒も さだめなら 離れて泣くのも さだめなの 今はむかしの はかない恋に あゝ 逢えない 逢えない人なのに 涙が涙が おいかける
二 呼んで見たとて つかのまの ほしより冷たい 面影よ なぜか今宵も ひとみに残る あゝ はかない はかない 花なのに 涙が涙が おいかける
三 恋の残り火 抱きしめて あなたのお名前 呼んで見る 別れわかれの 悲しい日ぐれ あゝ 忘れた 忘れた つもりでも 涙が涙が おいかける
扇ひろこ 略歷 扇ひろこ(おうぎひろこ), 本名은 乗松博美(のりまつひろみ), 1945年2月14日 広島県 広島市 段原中町에 出生했습니다. 生後 6個月을 만에 広島 原爆으로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와도 生離別하여 四国의 祖父母에게서 자라고, 그 後, 再會한 어머니와 함께 大阪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해 어머니에 이끌려 歌謡学院 等에서 노래 불렀습니다. 相愛高等学校 卒業 後인 1963年, 日本콜롬비아와 契約. 1964年8月6日 広島平和記念式典에서 石本美由紀 作詞의 「原爆の子の像」을 데뷔 曲으로서 노래 불렀습니다. 종이 鶴 무더기를 접으면서 原爆症으로 돌아가신 佐々木禎子를 그리워하는 이 노래는 原爆遺児의 한 사람으로서 노래 부르고 싶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版權을 広島市에 寄贈했기 때문에, 公式 데뷔 曲은 같은 해 発売된 『赤い椿の三度笠』가 됩니다.
1966年에 『哀愁海峡』, 1967年에 『新宿ブルース』가 크게 히트 하면서 第一線으로 나왔습니다. NHK紅白歌合戦에도 2回 出演하고 또, 女優로서도 活躍하고, 任侠映画의 女侠客 役으로, 1969年의 日活『昇り竜鉄火肌』 의 主演을 始作으로, 映画에도 多数 出演하였습니다.
任侠映画에서는, 東映의 藤純子, (現: 富司純子), 大映의 江波杏子와 함께 「日活の扇ひろ子」로서 人気를 떨쳤습니다. 그 外, 1971年의 東宝 『闇の中の魑魅魍魎』나 1972年의 東映 女囚さそりシリーズ 第1作 『女囚701号 さそり』 의 準主役의 女囚 役 等으로도 有名합니다.
1972年에 「鹿島密夫とダイナ・ショウ」의 鹿島密夫와 結婚했지만, 1976年에 離婚하였습니다.
現在도 全国各地의 홀, 溫泉場 等에서 公演을 繼續하고 있습니다. 最近에는 自身도 被爆者 手帖을 가지고 被爆 體驗도 가지는 等, 「原爆の子の像」이나, 美空ひばり가 第一回 広島平和音楽祭에서 부른 「一本の鉛筆」等의 反戰노래 等도 부르고 있습니다. 2009年9月8日, 『NHK歌謡コンサート』 (NHK綜合)에도 出演하여, 『新宿ブルース』를 불렀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