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謠背景函

경상도아가씨-박재홍///追憶을 따라 釜山으로

bsk5865 2015. 4. 30. 08:24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4.30 06:53

 

경상도아가씨-박재홍///追憶을 따라 釜山으로(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7199 


경상도아가씨-박재홍


경상도아가씨-박재홍

작사 손로원 작곡 이재호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사 하드래도 살아 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뼈에 매친 내 고장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영도다리 난간 위에 조각 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애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든 날밤 꽃송이를 부여 잡던
경상도 아가씨가 서러워서 우는구나
그래도 잊이 못할 가고 싶은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追憶을 따라 釜山으로

京釜高速道路를 따라 釜山으로 내려가던 날 서울과 釜山은 零下 12度에 이르는 寒波가 몰아쳐 市內는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三寒四溫이라는 말이 無色할 程度로 1週日 내내 서울의 氣溫은 零下卷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釜山은 낮이면 零上 5度까지 올라 陽地를 걸을 때는 따스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釜山은 嚴冬雪寒의 代名詞인 江原道 산골은 勿論 首都圈에 居住하는 사람들이 避寒 旅行을 떠나오기에 제격이었습니다.

釜山 토박이들이 들으면 어처구니없어 하겠지만,事實 釜山에 對한 記憶이라곤 6.25이 勃發하던 해 學徒兵으로 出征하여 陸軍 第2訓練所(釜山鎭初等學校)와 近來 찾아갔던 海雲臺가 全部였습니다. 겨울 바닷가는 드넓은 모래沙場을 끊임없이 홅는 波濤와 散策을 하는 사람들뿐, 閑山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海雲臺는 桑田碧海라는 古事가 어울릴 만큼 變貌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때의 旅行이 釜山의 一角만 보았던 것임을 알아챘습니다.

優先 하늘 높이 솟은 빌딩들 속에서 釜山의 過去와 뿌리를 찾는 旅行을 始作했습니다. 釜山驛 觀光案內所에서 받은 地圖를 펴고 歷史的인 名所를 하나하나 집어보니,汽車驛에서 자갈치 市場에 이르는 좁은 區域에 集中돼 있었습니다. 60年 前만 해도 이곳이 釜山에서 行人의 往來가 가장 많고 發達한 道心이었기 때문입니다.

釜山驛 건너편 초량동은 ‘上海거리’입니다. 港口와 가까워서 한 世紀 前에도 中國人과 日本人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華僑와 러시아 人들이 主人公입니다. 그래서 차이나타운의 象徵物인 붉은 門을 지나면 看板마다 漢字는 勿論 러시아 文字도 적혀 있었습니다. 들려 오는 言語가 多樣하고, 거리의 景觀도 獨特합니다.

開發의 狂風이 비켜간 上海거리는 古風스러우면서도 多少 투박합니다. 1884年 淸나라 領事官이 들어섰던 자리에는 華僑學校가 代身 서 있고, 1950年代부터 代를 이어 장사를 하는 中國飮食店도 많습니다. 그 中 하나인 ‘新發園’에서는 예전의 맛과 같은 팥 빵과 과배기를 販賣하고 있는데, 觸感이 거칠지만 재미도 있고 맛도 좋았습니다.

上海거리에서 地下鐵로 한 停車場 떨어진 中央洞驛 附近에는 韓國戰爭의 哀歡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砲火를 避하고 목숨을 지키기 爲해 避難길에 올랐던 사람들은 釜山으로 밀려들었고,政府는 臨時로 首都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동광동 언덕 윗길에서 中央洞‘새 마당’으로 내려가는 ‘40階段’은 그 時節 ‘만남의 場所’이자‘市場’이었습니다. 社會 混亂 속에서 家族을 잃어 버린 이들이 하염없이 기다렸던 이곳에는 當時의 日常을 表現한 彫刻像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中央洞 釜山郵遞局에서 東亞大學校 부민 캠퍼스까지 뻗어 있는 청로를 따라 걸으면 왼쪽으로 釜山 近代 歷史觀의 하얀 3層 建物 모습을 드러납니다. 日帝强占期 東洋拓植會社 建物로 지어진 이곳에는 釜山의 近 現代史가 整理돼 있습니다. 釜山이 어떻게 都市의 틀을 갖췄고, 險難한 時期를 거쳐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釜山 歷史旅行은 臨時政府의 자취가 남아 있는 西區 부민동에서. 終止符를 찍습니다. 지난해 5月에 開場한 東亞大學校 부민 캠퍼스. 博物館은 臨時首都 政府廳舍였습니다. 補修工事를 通해 깨끗해진 博物館 內部에는 建築 特性을 알려주는 기와와 벽돌을 비롯해 各種 文化財가 展示돼있습니다.

釜山 旅行에서 重要한 것은 體力과 時間 配分입니다. 釜山은 大都市답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시골에서처럼 景致 좋은 곳에 位置한 宿所를 定한 뒤 餘裕롭게 周邊을 돌아보는 旅行이 不可能합니다. 勿論 高級호텔이 즐비한 海雲臺에서만 終日 있겠다면 靜的인 日程을 짜는 것도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鍾路와 江南이 다르고 三淸洞과 淸潭洞이 같지 않듯 釜山도 地域에 따라 個性이 確然하게 區分됩니다.

釜山의 傳統的인 都心은 光復洞과 南浦洞 一帶입니다. 釜山 젊은이들은 親舊들과 約束 場所로 如前히 이곳을 選好합니다. 그러나 最近에는 變身을 거듭하고 있는 海雲臺와 廣安里가 外地에서 온 길손들을 誘惑하고 있습니다. 볼만한 곳이 漸次 늘어날수록 選擇의 岐路에선 旅行者들은 幸福해집니다.

一行이 戀人이든,家族이든 釜山으로 出發하기 前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國內 宿泊 豫約을 專門으로 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호텔을 미리 잡아두는 것입니다. 롯데호텔을 除外하면 노보텔,웨스틴 朝鮮호텔, 파라다이스 호텔 等 特急 호벨은 모두 海雲臺에 있는데,15万원 內外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습니다. 以外에도 괜찮은 호텔과 레지던스의 客室을 10万원에 豫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을 海雲臺에서 맞이한 뒤, 午前에 멀지 않은 廣安里로 移動합니다. 廣安大橋가 빨랫줄처럼 바다 위에 걸려 있는 廣安里는 카페,食堂이 많아 海雲臺와 비슷하지만 더욱 平和롭습니다. 몇몇 巨大한 빌딩들이 시야를 가로막는 海雲臺와 달리, 海邊을 따라 建物들이 一列로 配置돼 있어 어디에서든 바다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窓가 너머로 겨울 바다 風景을 感想하며 커피를 마셔도 좋습니다.

廣安里와 海雲臺 사이에 있는 센텀시티는 釜山에서 가장 浮上하고 있는 地域입니다. 世界 最大 水準의 百貨店과 展示 컨벤션 센터(BEXCO), 市立博物館이 모여 있어서 쇼핑과 文化生活을 同時에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大形 書店과 아이스링크, 스파 施設,映畵館, 美術館도 들를 수 있습니다.

다음은 文化的 趣向에 따라 行先地를 고를 次例입니다. 映畵를 좋아하면 光復洞,美術에 關心이 있으면 海雲臺 달맞이길입니다. 해마다 釜山 國際 映畵祭가 열리는 光復洞에는 大形 劇場이 몰려 있고, 바닥에 有名 俳優들의 핸드프린팅이 박혀 있습니다. 봄이면 벚꽃이 滿發하는, 韻致있는 고갯길인 달맞이 길에서는 작은 畵廊을 巡廻하며 美術品을 觀覽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釜山의 밤을 제대로 滿喫하려면 西面으로 向해야 합니다. 釜山 地下鐵 1號線과 2號線이 唯一하게 만나는 西面은 交通과 商業의 中心地입니다. 百貨店이 생기면서 釜山 最高의 쇼핑 名所로 浮上했고,멀티 플렉스 映畵管과 地下商街도 立地해 있습니다. 最大 l0個 車線에 이르는 大路 左右로 술집과 商店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습니다. ‘國內 最大’ 라는 修飾語를 붙여도 될 만큼, 繁華街가 넓고 流動人口가 많습니다. 늦은 時間까지 불夜城을 이루는, 나이트라이프를 爲한 空間입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