ちあきの夢は夜ひらく-千秋直美 作詞 西沢爽 作曲 曾根幸明
恋の遊びの 夜が明けて 白い車は 消えたけど 消えぬ あなたの おもかげに 夢は夜ひらく
来ないあなたと 知りながら 二つコーヒー とりました 雨の夜更けの 喫茶店 夢は夜ひらく
髪を染めても ただうつろ 爪を染めても ただうつろ 夜の鏡に 涙ぐむ 夢は夜ひらく
愛を知らない 女より たとえ泣いても 悔んでも ひとを愛した 思い出に 夢は夜ひらく
きっとなれます しあわせに そんなカードの 占いの 嘘を信じて 待ちましょう 夢は夜ひらく 夢は夜ひらく
저의 남편이랑 인사하실래요
일본인 남편과 아이 셋,다문화 가정의 안주인이 들려주는 생생한 일본 이야기.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 보였던 첫 일본 여행,열심히 공부했던 유학생 시절 그리고 남편,세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 일본 생활도 이제 10년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또 일본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하며 달려 온지 벌써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최고의 배움은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저 또한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유학,연애,결혼,육아를 거치는 동안 제 일본 생활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닌데요. 문득 언어도 알고 있었고 나름 문화까지 공부했던 제가 그랬는데 한국어도 잘 못하고 매운 음식은 도 닦는 심정으로 먹었다던 남편의 한국 생활은 어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좌충우돌 생활 기를 말씀 드렸다면 이번에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소개할까 해요. 그리고 아쉽게도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오랜 만남에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한류 열풍의 메카였던‘한류백화점’. 아쉽게도 지금은 문을 닫았습니다 JR 山手線에 있는 新大久保駅 제 남편 亀田利孝 씨를 만난 한국 지인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합니다. 친정엄마 표현을 빌리자면“어디다 내놔도 딱! 일본인 얼굴이다" 그 다음으로 “(얼굴과 달리) 일본인 같지가 않아요. 이런 일본사람은 처음 봤어요"라는 의견으로 통일된답니다.
이렇게‘완전 일본인’같은 생김새 때문에 한국 살면서 덕 본 일도 많았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두려움에 떨었던 적도 있는데요. 한때 독도 문제로 양국의 분위기가 한껏 험악했을 때 주유소마다. ‘일본인 사절’이라고 붙여 놓아서 상당히 긴장했던 적이 있답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의식적으로 제가 가르쳐준‘독도는 우리 땅’을 열심히 흥얼거렸다고 해요.
사실 맨 처음 독도에 대한 남편의 생각은 작은 섬 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투느니 평화롭게 양국모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저와 친정식구들이 얼마나 격분했던지요. 한국인과 결 흔한데다‘독도는 우리 땅’을 2절까지 불러가며 왜 독도가 한국 땅인지 가르쳐 줬는데도 이 정도이니 일반적인 일본인의 생각은 어떨지 상상이 되시나요? 이후 남편은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까지‘독도는 우리 땅’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했답니다.
이렇게 평범한(?) 일본인이었던 남편이 한국과 인연을 젖게 된 것은 입사 1년 차에 한국 영업 담당자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군대를 안 가니까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해외 담당자가 된 터라 한국지사에도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났더랬죠.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 인식한 것은 고등학교 때라고 하더라고요. 일본은 비평준화라서 시험을 치고 성적에 맞는 학교에 입학하는데 남편이 합격한 고등학교가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東京의 新大久保에 있었던 거예요.
新大久保는 10여 년 전 겨울연가로 시작되어 아이들, 화장품,음식까지 일본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류 붐을 타고 유명해졌지만 그때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는데요. 그렇다고 한국에 관심이 생긴 건 아니고 시회 선생님이 코리아타운과 재일교포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셔서 ‘근처에 재일교포라는 한국인 시회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그때는 한국인과 결혼해 잠깐이지만 한국에서 생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이번 주제를 잡고 나서 남편에게 한국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물어 보았더니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사람’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철 안에서 전화도 못 하는데 중간에 떡 하니 서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에도 놀랐지만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물건을 놓고 가서 무척 당황했대요. 안 산다고 돌려주면 될 것을 누가 일본인 아니랄 까봐 거절하기 미안해서 이것 저것 참 많이도 사왔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사 집 빼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올드팝 전집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지하철 상인은 지금도 신기한데 아마 많은 일본인 들이 깜짝 놀랄 거라며 웃더라고요.
남 눈치 안보고 오지람도 넓고 일본인 입장에서는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남편은 허물없이 친근하게 대해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정이 잠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특히 뽀글 머리 한국아줌마들의 파워에는 깜짝 놀랐대요.
또 활력 넘치는 한국 아줌마들도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담처럼 아줌마들을 제3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본인 눈에는 어 댔겠어요.
먼저 눈에 띈 건 하나같이 똑같은 헤어스타일! 일본 아줌마들은 보통 커트 머리나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는데 저희 친정엄마를 비롯해 한국 아줌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여서 놀랐다고 해요. 게다가 옷도 빨강,파랑,노랑 같은 원색이 많아 신기했는데 한복 색깔에 원색이 많고 화려한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나름 분석도 했다네 요. 덧붙여 한국 아줌마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가 나면 일단 가방부터 던진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는데 직접 보지 못하고 떠나온 게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없겠죠?
사실 저희 남편은 일본인 치고는 조금 특이한 스타일이라 몇 년 전 한국에 살 때도 동네에서 인기 만점이었답니다. 외국인이라 가뜩이나 신기한데 성격도 활발하고 말귀도 잘 알아들으니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죠.
하루는 마트에 심부름을 보냈는데 한참을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마트 주인 아저씨,횟집 아저씨와 함께 낮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벌겋게 술이 오른 아저씨들은 “이렇게 한국말 잘 하고 술도 잘 마시는 일본인은 처음 본다"며 아주 신이 나셨더라고 요. 그리고 남편은 그 옆에 앉아서 넉살 좋게 공짜 술에 안주인 육회와 회도 공짜로 얻어먹고 있었어요. 일본인 하면 남에게 폐가 될까 쓸데 없이 걱정하고 웬만하면 사양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참 놀랍죠?
이 에피소드는 남편이 한국생활에서 가장기억에 남는 일 중하니라고 하는데 일단 안면만 트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허물 없이 친근하게 대해 주는 게 좋았다고 합니다. 이웃간에 조금은 삭막한 일본에서 살아보니 남편이 우리나라 아저씨들의 넙치는 정과 오 차람의 매력에 빠질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인관계가 좋은 것은 밝은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액션이 좋은 일본인의 특성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크게 반응하고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음식을 먹고 나서 “おいしい~(맛있다)" “う~まい(맛있다(주로 남자가사용))"라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잖아요.
일본에서는 대화할 때 리 액션이나 맞장구가 무척 중요한데 남편의 특기가 바로 맞장구 치기랍니다. 어찌나 적시적소에 반응하는지 언뜻 보면 한국어를 무척 잘 하는 것 같아서 마트 주인 아저씨 말처럼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하는 일본인이 있다니 !"라고 칭찬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조금 전에 들은 내용을 물어보면 30% 정도 밖에 못 알아 들었더라고 요. 남편은 이 모든 게 자신의 뛰어난 영업능력 덕분이라며 웃어넘기는데 가끔 친정엄마가“자네 거시기 좀 가져다 주소"라고 하면 찰떡 같이 알아 듣고 가져다 드리는 걸 보니 눈치도 무시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살 때 남편의 고민이라면 역시 어려운 한국어였는데요. 주경야독으로 퇴근하고 몇 개월간 한국어를 배웠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다 까먹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 슬쩍 넘어가는 기술만 늘었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려서 ㄴ과 ㅇ은 틀리기가 부지기수 가장 취약한 곳은 ㅈ과 ㅊ인데 절대 구분이 안된 다네요. 단어 실수도 많이서‘귀뚜라미 우는 달밤에’를 ‘미꾸라지 우는 달밤에’라고 써서 웃음보가 터진 적도 있죠. 그래서 가끔 우울할 때면 맞춤법이 다 틀린 남편의 한국 쇼핑 리스트를 보며 삶의 휠력을 되찾곤 합니다.
또 한번은 남편이 “가드기요가 뭐야?"라고 하는 거예요. 가타부타 가드기요가 뭐냐니-상황설명을 해 보라고 했더니 지방 출장을 가다가 주유소에 들어가면 한국인 직원이 항상 “가드기요"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무엇이냐는 거지요. 그제서야 이해가 된 제가 “기득이요! 기름을 확 채워달라고 할 때 쓰는 말이야. 일본어로 만땅(満タン) 말이야"라고 했더니 무릎을 탁 치더라고요. 일본에서는 “満タンでお願いします。(가득 넣어 주세요.)"라고 하는 데 가드기요’는 그보다 간결한데다 왠지 정겨워서 마음에 든다네 요. 그래서 아이들 방학 때 한국에서 주유소에 가면 신 나서 “가드기요I"라고 말한답니다. 또 응용력을 발휘해 “어머님, 막걸리 가드기요!"리고 말해서 장모님께 사랑 받기도 하지요.
한국에 살면서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도 낯설었을 텐데 친정엄마랑 마트에 가면 친정 거 우리 거 가리지 않고 계산해주는 남편(일본에서는 보통 부모 자식 간에도 한꺼번에 계산하지 않습니다) 장모님이 좋아하신다고 막걸리 잔에 손가락을 넣어 휘휘 저어 마시는 남편,매운 음식을 잘 못 먹으면서 장모님 김치가 최고라며 너스레를 떠는 남편,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배우고 이해해주는 남편이 참 고맙기만 합니다.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으니까 제가 더 배우고 이해해야겠죠?
여러분 덕분에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을 때부터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에서 생활하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제 일본어 역시를 정리해보는 좋은 기회를 가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함께 해 준 여러분에게 감사 인시를 전하며 저는 다음 기회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 뵐게요.
作成者 黃圭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