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곡(인생의 길)-김영임
일심으로 정념은 극락세계라. 보옹 오호오흥 어아미로다. 보옹 오오호오흥 에…… 염불이면 동참 시방에 어진 시주님네 평생심중에 잡순 마음들 연만하신 백발노인 일평생을 잘 사시고. 잘 노시다 왕생극락을 발원하시며, 젊으신네는 생남발원 있는 아기는 수명장수, 축원이 갑니다 덕담갑니다.
하늘같은 이 세상에 문전축원 선사 덕담 정성지성 여쭐뒬랑, 대주전 영감마님 장남한 서방님들, 효자충남한 도련님들 하남엔 여자에게 젓 끝에는 금년생들 하늘같은 이 세상에 일평생을 사시자 하니 어디 아니 출입들을 하십니까?
삼생인연은 불법만세 관재구설 삼재 팔난 우환질병 걱정근심 휘몰아다 무인도 깊은 섬중에다 허리 등실이 다 버리시고 일신정기며 인간 오복 신수 태평 얻어다가 귀한 아들 따님 전에 전법하니 어진 성현의 선 남자 도리로다.
명복이 자래라, 아하 아하 헤나네 열의 열 사십 소사 나하아 아하아아
佛敎의 敎祖 釋迦牟尼의 國籍은 오늘이 佛紀 2554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의 誕生地인 룸비니(藍毘尼), 成長한 곳인 카필라(迦毘羅, Kapila)城 等은 모두 現在 네팔의 領土입니다. 부처는 어머니인 마야王妃가 出産을 爲해 親庭으로 가던 길에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습니다. 出生과 成長한 곳의 位置를 現在의 國境 槪念에서 보면 부처는 ‘네팔 國籍’인 셈이지요.
그렇지만 29歲 때 王宮을 나와 求道의 길에 나선 以後 부처는 現在의 印度 領土에서 大部分의 生涯를 보냈고 80歲에 涅槃(열반)에 든 곳 亦是 現在의 印度 領土인 쿠시나가르입니다. 이 때문에 ‘부처의 國籍은 네팔인가? 印度인가?’라는 疑問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對해 學界에서는 “近代 以後의 國家 槪念을 基準으로 부처님의 國籍을 따지는 것은 困難하다”고 말합니다.
紀元前 6世紀 부처 時代에 히말라야 山脈 南쪽 印度大陸에는 16個의 크고 작은 나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中 마가다(Magadha)國과 코살라(Kosala)國 等이 强國이었습니다. 부처가 太子로 태어난 카필라國은 이 열여섯 나라에 끼지 못할 程度로 작고 弱했습니다. 카필라國은 强國인 코살라國의 侵略 威脅을 여러 차례 받았고 結局 부처 生存 時에 코살라國에 依해 滅亡했습니다.
印度大陸에서 統一王朝가 最初로 登場한 것은 BC 317年 찬드라 굽타(Chandragupta)가 세운 마가다國의 第3王朝인 마우리아(Maurya)王朝였습니다. 알렉산더(Alexander) 大王의 東方遠征軍이 印度에서 물러난 後 세워진 마우리아王朝는 現在의 네팔 地域을 包含해 印度大陸 大部分을 掌握했습니다. 當然히 룸비니와 카필라城도 마우리아 王朝의 領土에 包含됐습니다.
찬드라 굽타의 孫子인 아소카王은 마우리아王朝의 代表的인 君主입니다. 漢字로는 아육왕(阿育王)으로 表記되는 아소카王은 活潑한 征服活動을 벌였고 佛敎에 入門한 後에는 佛法에 依한 理想 政治를 폈습니다. 그는 自身의 王國을 巡禮하면서 부처의 遺跡地와 聖地에 巨大한 돌기둥(寫眞)을 세우고 부처의 가르침을 傳했습니다. 그는 印度 東北部 地域에서 發生한 佛敎를 印度 全域과 이웃 나라에 傳播하고 世界化했다는 点에서 基督敎를 公認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皇帝에 比肩됩니다.
크고 작은 여러 王朝가 明滅하던 네팔 地域은 18世紀 後半 統一王朝가 만들어진 後 지난 2008年 共和制로 바뀌었고, 印度는 英國의 植民地를 거쳐 1947年 獨立했습니다.
“嚴格히 말하면 부처님은 ‘現在의 네팔 地域에 있던 카필라國 國籍’이라고 할 수 있지만, 印度 最初의 統一王朝인 마우리아 王朝에 依해 부처님과 佛敎가 널리 알려졌다는 点에서 印度 出身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도 합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