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原裕次郎 - 北の旅人
https://www.youtube.com/watch?v=S1uNNf69hH8
北の旅人 五木ひろし
https://www.youtube.com/watch?v=eSLshED2ybU
北の旅人冠二郎、石原裕次郎を歌う! 北の旅人
https://www.youtube.com/watch?v=usDcXpI3plM
北の旅人 (カラオケ) 石原裕次郎
https://www.youtube.com/watch?v=j10Xt1qQqPc
テレサ・テン/ 北の旅人
https://www.youtube.com/watch?v=tEfhm5MgfCI
北の旅人 [K-40227] [1987]
作詞: 山口洋子 作曲: 弦 哲也 唄 : 鄧麗君 (原曲 石原裕次郎 昭和 62年)
たどりついたら 岬の はずれ 더듬어 찾아가보니 곶 근처
赤い 灯が 点く ぼつりと ひとつ 붉은 등불이 덩그러니 하나
いまでも あなたを 待ってると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라고
いとしい おまえの 呼ぶ 声が 사랑스런 너의 부르는 목소리가
俺の背中で 潮風に なる 나의 등 뒤에서 갯바람이 되네
夜の釧路は 雨に なるだろう 밤의 구시로는 비가 올 것 같아
ふるい 酒場で 噂を 聞いた 허름한 술집에서 소문을 들었어
窓の 向こうは 木枯らし まじり 창 너머는 차가운 진눈깨비
半年 まえまで 居たと いう 반 년 전까지 여기 있었다고 하네
泣きぐせ 酒ぐせ 涙ぐせ 우는 버릇 술버릇 눈물버릇
どこへ 去ったか 細い 影 어디로 갔나 가날픈 모습
夜の函館 霧が つらすぎる 밤의 하코다테 안개가 너무 괴로워
空で ちぎれる あの 汽笛さえ 하늘에서 흩어지는 저 기적조차도
泣いて 別れる さいはて 港 울며 헤어지는 땅 끝 항구
一度は この手で 抱きしめて 한 번은 이 손으로 꼭 껴안아
泣かせて やりたい 思いきり 울려주고 싶어 마음껏
消えぬ 面影 たずねびと 사라지지 않는 모습 찾아 헤메는
夜の小樽は 雪が 肩に 舞う 밤의 오타루는 눈이 흩날리네
(음원 : 밀파소演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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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原裕次郞 石原 裕次郎(いしはら ゆうじろう、1934年 12月28日 - 1987年 7月17日)は、 日本のアイドル、マルチタレントであり、俳優?歌手?司会者?モデル、 実業家、ヨットマンとして活動。愛称はタフガイ?裕ちゃん?ボス?ユ?ジロ?。 石原軍団総帥、石原プロモ?ション元代表取締役社長(初代)兼会長。 多摩川サケの会支持者。 兵庫県神戸市須磨区、北海道小樽市、神奈川県逗子市に育つ。 父?石原潔は愛媛県、母?石原光子は広島県宮島の出身。 稲穂国民学校時代に競泳や天狗山 でスキ?に親しむ。 逗子中学校時代からはバスケットボ?ルに熱中した。 その後慶應義塾高校を目指すが受験に失敗し、慶應農業高校に籍を置くが、 1951年に慶應高校に入学。 이시하라 유지로 ( 1934 년 12 월 28 일 - 1987 년 7 월 17 일)는 일본의 아이돌 멀티 탤런트이며, 배우, 가수, 사회자 ,모델, 실업가, 요트로 활동. 애칭은 터프 가이 유 양 ,보스유지로. 이시하라 군단 총수, 이시하라 프로모션 전 대표 이사 사장 (초대) 겸 회장. 타마가와 연어 모임 옹호자. 효고현 고베시 스마 구, 홋카이도 오타루시, 神奈川県逗子市에서 성장한다. 아버지 石原潔는 愛媛県、 어머니 石原光子는 広島県宮島 출신. 이나호 국민학교 시대 수영과 天狗山에서 스키를 즐긴다. 즈시 중학교 시절부터 농구에 열중했다. 그 후 게이오 고등학교를 목표로했지만 시험에 실패, 慶應農業高校에 적을두고, 1951 년에 게이오 고등학교에 입학. その後慶應義塾大学法学部政治学科に内部進学するが、放蕩生活に明け暮れる。 俳優を目指し東宝と大映、日活のオ?ディションを受けるも全て不合格。 しかし1956年に、映画プロデュ?サ?水の江瀧子と兄?慎太郎の推薦があって、 慎太郎の芥川賞受賞作『太陽の季節』の映画化の端役で映画デビュ?。 続いて製作された、同じく慎太郎原作の映画化作品『狂った果実』に主演。 その後は歌手?俳優として活躍し、昭和を代表するスタ?の一人となったが、 ケガや病気に苦しんだ一生でもあった。戒名は陽光院天真寛裕大居士。 墓は万成石五輪塔で神奈川県横浜市鶴見区にある總持寺に立てられている。 墓碑には夫人直筆で次のような言葉で綴られている。 「美しき者に微笑を、淋しき者に優しさを、逞しき者に更に力を、 全ての友に思い出を、愛する者に永遠を。心の夢醒める事無く。」
그 후 게이오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내부 진학하지만, 방탕한 생활에 몰두한다. 배우를 목표로 토호와 다이에이, 일활의 오디션들도 모두 불합격. 그러나 1956 년, 영화 프로듀서 임진 瀧子와 兄 신타의 추천이 있고, 신타의 芥川賞 수상작 "태양의 계절"영화 화의 단역으로 영화 데뷔. 이어 제작된 역시 신타로 원작의 영화화 작품 "미친 과실"에 주연. 이후 가수 배우로 활약하고 쇼와(昭和)를 대표하는 스타의 한 사람이되었지만, 부상과 질병에 시달린 평생이기도했다. 계명은 陽光院天真寛裕大居士. 무덤은 万成石 올림픽 타워가의 神奈川県横浜市鶴見区에있는 總持寺에 세워져있다. 묘비에는 부인 자필로 다음과 같은 말로 쓰여있다. "아름다운 자에게 미소를 외로운자에게 친절을 씩씩한자에게 더욱 힘을, 모든 친구에게 추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을. 마음의 꿈을 깨우는 일 없게. ".....http://blog.daum.net/tmo119/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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