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조카의 도움. 부끄러운 삼촌

bsk5865 2021. 9. 18. 17:24

조카의 도움. 부끄러운 삼촌

 

지난 1974__1983까지 내 불운하여 도처불성(到處不成)의 10년을 울분과

세정을 원망하고 죽고 싶은 마음으로 소일하고 있을때 나를 따뜻하게 보

듬어 준것은 고향 가족이었고 그중에 학서(鶴緖)가 헌신적으로 도와 주었

으나 아무런 보답도 못해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면 학서는 차남이지만 일찍부터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 집안의 농사일을 맡아 고생해 왔었다.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인생의

고민도 쌓였을 것이고.....아무런 자기 장래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무한정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만 있을수는 없는 일.....결국  큰 용단으로 스스로 제 인생의

앞날을  개척했었다. 오랫동안 가족의 생계인 농사일을 했어도 차남의 몫이

라고 이름 지어 주지 못한채로 갑짜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에 슬픔과

한스러움이 겹친 과거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자기 인생의 고뇌를 안고 농사와 함께 과수원 일에 골몰했던 시절에

문서 소유의 논을 빌러 농사 지어 나락을 경운기로 실어다 주었다. 그때 쌀은

"아끼바레"가 최고...이 나락을 옆집 정미소에 보관 시켜두었다가 쌀 한가마니

갖다 먹고 그 정미소가 망하게 되어 학서가 고생한 보람도 없이 받지 못했었다.

이렇게 나의 불운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됐었다.

 

알뜰하게 논둑에 콩도 심었고

그 콩을 타작하여 형님이 콩자루를 메고 오셨을때 눈물을 참았었다.

그 때 형님 회갑을 지냈는데 보태줄 것이 없어 고향가서 방 도배하는것 거든것

뿐이다. 잔치 끝나고 남은 음식을 가져와 빚쟁이에게 시달리던 우리집의 성찬

이 됐었다.

 

가족에게 두터운 정을 배풀었던 학서는 자립(自立)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철도

공무원이 됐고 타고 난 신체구조 때문에 큰 수술을 하고도 굳굳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둡고 괴로운 백수의 10년 고생 끝에 한 많은 봉화를

버리고 대구로 와 버렸으니 베풀어 준 고마음도 모르는 파렴치한 삼촌이 돼버렸다.

우리 내외는 두고 두고 미안한 생각을 간직했고 지금도 가끔 그 예기를 한다.

 

1979, 11, 할머니 돌아가시고 상여가 솔무래 정든 집을 떠날 때 상여에 메달려

"할매"를 목메 부르면서 통곡하던 학서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서러워하는 그 모습에서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갑진 가족의 사랑. 특히 함께 살

았던 조손(祖孫)의 깊은 사랑을 실감했고 이를 가슴에 새겨 두었었다. 지금도

그 모습 떠 올리면 눈물이 핑 돈다.

 

<남기고 싶은 사연 하나 "송이"이야기>__________________

 

내 기호식품에 아마 송이는 으뜸의 자리를 찾이하고 있을것 같다. 가을이면

고향 송이 산에서 송이 따던 흥분과 짜릿한 기쁨은 잊을 수 없고 향과 맛은

더 잊을 수 없어 체질화 되어있는건 아닌지....그래서 여름가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일면 송이 철이 온 것을 느끼며 향수에 젖곤 했었다.

 

2016년 가을 학서가 고향 송이를 보내 주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복이 터

졌다. 가슴 뛰는 설레임과 기쁨으로 고향송이를 맞이했고 두고 두고 고향의

가을을 추억하면서 송이 향과 맛을 즐겼었다. 고마왔다.

자기 살기도 바쁜 세상에 출관한 삼촌! 사려 깊은 배려에 감복하면서 지난

나의 생애를 돌아 봤다. 나는 해 준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끄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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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서의 2016년엔 행운이 왔다. 아들의 혼사가 성사됐다. 어려운 인륜대사가

잘 풀려 절차를 밟아 12월 4일 결혼식 일자 까지 잡혔다. 일생에 단 한번

경험할 아들 결혼식 혼주! 얼마나 뿌듯했을까?...남들이 모두 경험하고 늙어

가지만 학서에겐 특별하다. 아들 하나를 금지옥엽으로 키웠으니까......

 

뒷날에 새아기 친정이 대구 범물동에 있었기에 잠간 만나 볼 기회가 있었

다. 듣던대로 새사람 잘 맞이했고 모든 범절이 우리 집 식구로 손색이 없었

다. 천생배필를 맞이했다.

 

양쪽 모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새상 살아가는 기본이 튼튼하고

또 사랑과  믿음이 있고 효도의 본(本)을 알고 있으니 그 위에 또 뭘 바라겠

는가?  아들 내외가 잘 살아가는 모습 지켜 보면서 남은 인생 헛되지 않게

아끼고 즐기며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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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흘러 학서는 사회참여의 기회가 늘어나 마지막 봉사의 황금기

를 맞은듯 하다.

정당에도 참여하고 종친회(宗親會)에도 모두 중견간부(中堅幹部)로 발탁되어

참여하고 있으니 이는 사회 지도층으로  인정 받고 있는것이다.

가슴 뿌듯하고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더욱 자중하고 지명도를 높혀 그 자리에 큰 자취를 남겨 후세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라.

아울러 우리 대가족의 명예를 지켜가며 도약(跳躍)의 불을 지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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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자  찬원(贊元)이 40대에 쌍태 생남했다는 소식은 반갑고 놀라운 일로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위로 5대를 살펴봐도 쌍태는 없다.

특히 외동으로 찬원이는 아들 형제를 두었으니 이로써 큰 효도를 다한것이다.

 

우리 가족의 대경사이고 또한 축복이다.

윗 어른들의 저선(積善)의 업보이고 가운대통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타고 난 명운대로 큰 인물로 잘 키우자.

 

앞으로 쌍태 손자의 커감을 즐겨 보면서 조손간의 새로운 사랑을 심고 학(鶴)

처럼 고결하게 천수를 다해라..............2020,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