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校長의 칠순잔치
우리 집에 동갑내기 숙질이 컸었고 평생 걸어 온 길도 같은 길이다.
정규 사범계출신(正規師範系出身)이며 교육계에서 청춘을 받쳤고 직급이
올라감에 따라 사회적 신분 상승도 뒤따랐다. 국가 사회에 이바지할 책무가
부여된 공인으로서 마지막 까지 성실히 그 책무를 다했다. 국가는 영예로운
훈장을 내렸고 정년퇴임이란 영광을 안았다.
이로써 전반생(前半生)의 삶은 우리 집에서 제일 높은 벼슬을 하고 막이 내
렸다. 죽어서도 벼슬인 그 직함은 따라 다니게 된다.
후반생(後半生)의 삶! 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수명은 길어지고 하는
일이 없다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모두의 바램은 건강, 부부해로
(夫婦偕老), 노후 자금....등이다. 이 바램의 기본을 갖춘 박교장은 퇴임후 조기
(祖基)를 찾아 고가(古家)를 손질하고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소일(消日)을 시작
했었다. 귀소(歸巢)의 기쁨도 누리고 건강도 챙기며 자급자족의 절제된 생활토
대를 마련했었다.
그로 부터 한 숨 돌려 맞는 칠순이니 얼마나 흐뭇했을까!....하면 더욱 좋고 안
해도 흉 볼 사람 없는 칠순잔치! 2003, 10, 10, 70평생을 뒤돌아 보게 하고
이 만큼 잘 키워 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자식들이 베푸는 칠순잔치었으
니 당사자는 물론 축하하는 사람의 마음도 같은 것이리라.....
4남매를 키워 각기 생활의 길을 열어 주었고 손자 손녀 며느리 사위...18명의
대가족으로 발전했다. 이 새상에서 이룩한 자취가 이렇게 화려하게 펼쳐젔다.
개인이나 사회에 공헌한바가 지대하니 오늘하루 치하 받는 주인공이 됨은
당연한 것이지.....마음껏 받고 즐겨 후일 더 기쁜날을 맞는 믿거름으로 삼자구나....
위로 5형제중 세상 떠나시고 남은 3형제와 본인의 동기 종형제들...와야할 사람
모두 한자리에 모였으니 얼마나 반가은 자리인가? 자식들의 하례의 자리가 마련
되어 모두가 지켜 보는 가운데 화기애애(和氣靄靄)하게 진행 됐다.
이어 준비된 푸짐한 잔치상을 받았고 약주 잔도 오고 갔다. 정담을 나누며 교환
하는 술잔에 세상 시름 모두 잊고 마음껏 즐기는 축하의 자리로 무르익어 갔다.
가벼운 농담이 이어 지더니 누가 먼저라 할것도 없이 한가락식 터져나왔고 종손녀
친구인듯한 여성의 솜씨가 좋아 한동안 분위기를 이어 주었었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 노는 자리에서 벙어리도 음치도 없었다. 등굽은 꼽새의 춤을
겯들인 우스꽝스런 춤솜씨에는 폭소가 쏟아졌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게
아니고 그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남을 즐겁게 따라서 나도 즐거우면 된거지........
양껏 먹었고 즐겁게 놀았으면 헤어 질 일이지 미미적거리다가 기어이 또 한곳을
거치고 잔치의 끝자락을 장식했다.
우리 식구 한자리에 모여 이렇게 즐겁게 어울려 본 것도 오랫만이었다. 그 기회를
만들어 준 박교장 칠순잔치! 치하와 함께 고마왔다는 기억도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겠다.
또 즐거웠던 기억 하나! 1999, 5, 11-12. 석포교장 재임시 하룻밤 묵으면서 지낸
것! 산나물 뜯고 대현쪽인지 어느 집의 닭고기 맛이 있었고. 드릅 있는곳 찾아 신
나게 드릅 꺾은일...열묵어가 서식하는 백천계곡. 1980 창건했다는 현불사 구경....
석포역에 도착 마중나와 준 것과 떠날때 나물보따리 들고 역까지 나와줬던 모습들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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