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憤怒)의 표출(表出)
태펑양전쟁(太平洋戰爭, 미국과 일본간의 전쟁...세계2차대전)이 한창인 1943
년경(頃)의 일이다.
군수물자(軍需物資)를 조달하기 위한 방편인지는 무르겠으나 농가에 꼭 있어야
할 농우(農牛)를 강제 징발해 가는 일이 있었다.
운이 나빠서 그런지 우리 집도 이런 기막힌 수난을 당했었다.
어느날 하교길에 솔무래에 들렸는데 아버지가 관리(官吏)같이 보이는 사람을
붙들고 애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계셨다.
한참 옆에서 들어 보니 우리집 황소가 매여 있는데 그 소를 징발대상으로 지목
한 것을 철회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이야 전기, 기름, 농기구가 기계화 되어 모든걸 해결해 주지만 그 시대에는
모두 인력으로 해결했고 논갈이, 밭갈이, 운반등 힘드는 일은 소의 힘을 빌렀었다.
그래서 그 황소를 농사 짓는 소라는 뜻으로 농우(農牛)라고 불렀으며 우리 농촌생
활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다.
농우는 식구의 일원이고 재산목록 1호였다. 어느 집이나 소는 있었지만 든든한
농우는 흔하지 않았다.
농촌생활에 필수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우리 집 잘 생긴 황소를 징발해 가면 우리
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농촌사정을 참작해
달라고 간절히 빌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젊은 이 사람은 고자세로 안된다고 완강히 거절하고.....그도 징발
해 오라는 출장명령을 받았을 것이고, 누구 집의 것을 징발해도 순순히 소를 내주지
않을 것이기에 요지부동의 처지가 된듯 하다.
이런 시간을 오래 끌었지만 쌍방의 처지는 더욱 팽팽해질 뿐 진전의 기미는 보이지
아니하자 어쩔 수 없다고 먼저 판단하셨는지 태도가 바뀌었다.
참았던 분노는 무서운 힘으로 표출됐었다.
"이 놈 네놈의 집도 농사짓고 살터인데 네놈의 것을 먼저 가저 가거라, 애비 연배인
내가 그만큼 이야기 했으면 돌부처라도 들어 주었을 것이다. 천하에 못쓸 놈...."줄줄
이 이어지는 분노를 터트리면서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멱살을 잡히고도 "놓으세요"라고 할뿐 힘으로 뿌리치지도 반항
도 안했다. 그도 이 지방 사람이라 연장자(年長者)에 대한 기본 예절은 지키는듯 보
여 더 보기 흉한 힘의 대결 같은 것은 벌어지지 안았다.
하기야 사전에 그러한 지시도 받고 출장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저녁 우리 집 황소가 강제징발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건에 온 집안이 근심 걱정
에 쌓었었다. 소문을 듣고 동내 사람들도 찾아와 뜻을 함께 하며 걱정해 주었다.
당장 어떻게 할까?....한결 같이 걱정만 했을뿐 신통한 대책이 있을수도 없었고 그 시대
에 영(令)을 어기고는 감당할 수 없기에 분하고 억울함을 스스로 견디며 스스로 해소 해
나갈수 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가 됐었다.
가난하고 힘 없는 백성들의 억울하고 슬픈 역사였고 이것도 무모한 전쟁의 아픔이었다.
징발된 우리 황소의 대금을 받아 새로 소를 사들였으나 어디 징발 당한 황소만 하겠는가?
그 소가 우리 집에서 더 자라 농우(農牛)의 자리를 되찾아 일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식구들의 정성이 이어졌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감정을 잘 참고 조절하셨지만 우연한 기회에 인간 본연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으로 안 그래도 아버지 앞에서는 작아지는데 더욱 무서운 어른이란 생각
도 들었다.
우리 황소를 징발해 갔던 그 젊은이......눈섭이 짙고 눈이 이글거렸으며 얼굴이 거무스래했
던 그 인상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해방후 세월이 흘러 나도 사회인이 된후에 중늙은이로 변한 그 사람의 모습을 장터에서
봤었다.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 어릴적에 봤던 일이고 그도 세월 따라 늙어 버린 사람....또 그 시대에 있었던
일....아버지를 생각하고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 보면서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되새
겨 봤다. 그 사람도 세월을 탓하기 전에 "그때는 남에게 차마 못할 일을 저질렀다" 고 뉘
우치면서 남은 세월 살다가 갔을것이라고 지금은 믿고 싶다.
한편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도 일제치하(日帝治下)에 살기 위해 취업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그일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계형인 것이라도 이것을 친일(親日)행위로 치부할 것인지?
걸핏하면 유행처럼 친일파로 모는 요즘의 그 사람들에게 공연이 물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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