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량곡(軍糧谷)산의 입목벌채(立木伐採)
이 산은 보안림(保安林)이고 도로변이라 벌채허가(伐採許可)가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형님이 입목(立木)을 상인에게 지상권 설정등기(地上權 設定登記)를 해주고 매도한
후 수년이 흘렀었다.
그 대금의 처리는 위로 형님께서 하신 일이라 알 수 없었고 산주(山主)명의를 큰형님 앞
으로 변경해야할 시점에 이르러 이의 해결을 나에게 부탁했었다.
해결방법은 우선 매수자에게 계약해제를 위해 배상 해야 하고 배상금을 충당하기 위해
서는 벌채를 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 뿐이었다.
우선 입목 매수자를 찾아가 꿇어앉아 빌다 싶이 간청했다. 사채를 빌러 대금을 계약조건
대로 배상하고 지상권 말소서류를 구비하여 말소 시켰다.
겸해서 큰형님 앞으로 명의변경 등기도 해 드렸다.
이렇게 형님의 부탁은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어 형제간에 기분이 좋았었다.
벌채를 해야 사채를 얻어 배상한 대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벌채허가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 이어 매목(每木)등 절차를 모두 거쳐 벌채하게
됐다.
자금이 없어서 생산량을 담보로 차용하여 작업인부들에게 지장이 없도록했고 작업 중간에
인부 대접에도 신경 썼었다. 환심을 사야 알뜰히 해줄줄 알고 닭고기, 막걸리등 현장 올때
마다 그냥 다녀가지는 않았다.
작업이 끝나고 생산량의 검척고에 따라 인부임도 즉석에서 청산해 주었었다.
마지막 절차인 인수할 사람(선금준 사람)이 와서 검척하고 그 재적에 따라 나와 선금을 제
하고 정산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인부들에게 작업비로 준 재적(才積)과 인수할 사람이 와서 검척한 재적과의
차이가 상식 밖으로 컸었다. 검척하면서 차에 실었기 때문에 인부들이 쌓아 놓은 목재더미
를 허물어 보니 몽치미 같은 나무토막, 말구(末口)와 벌구(伐口)가 바낀것 등, 벌채현장에서
볼 수 있는 악덕 인부들의 하는 소행이 그대로 재현된 것을 보고 실망 했었다.
잘해 달라고 술 대접, 고기 대접 했고 그 곳 사람들을 믿었는데...이럴 수가...
보기 좋개 당했다. 돈 앞에는 돈만 보이지 다른 것은 못보는 것이 말단 인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과로 손해를 많이 봤었다. 본래 예상은 입목(立木)대금 위약금등 상인에게 배상한것과
인부임 잡비를 제하고...잘 하면 본전(本錢)치기로 두분 형에 대한 내 성의(誠意)표시만 되면
족(足)하다고 마음 먹었는데 의외의 큰 손실이 생긴 결과를 봤었다.
예상했던 입목에도 차질이 있어 예상 생산량에 미달했고 믿었던 인부들의 작난도 원인중에
한 자리를 찾이했었다.
군량골산 벌채는 이런 전말을 가지고 있는데 혹자(或者)는 그 산의 벌채도 돈 벌게 해주기
위해 제공한 것이라고 오해가 있어 왔다.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 산은 벌채허가를 받기
가 어려운 곳이다.
그날 아버지 기일(忌日)이었는데 제상 앞에 서서 한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운이 따라 주지 않느냐"고...
그후 이런 인복(人福)도 재복(財福)도 없는 불운의 세월을 겪다가 견딜 수 없어 고향을 등지
고 타향 객지로 흘러들어 갔었다.
만약 이 일의 종결을 못봤다면 통상적으로 도로변 보안림이기에 벌채는 어려웠을 것이고
입목매수자가 이를 이유로 해약을 통보해 왔다면 위약금을 제한 잔금은 되돌려 주어야 한다.
현금은 수년전에 사용하고 없을 것이기에 난감했을 것이다.
또 작은 형 명의로 등기 되어 있었으므로 후에 상속문제에 있어서도 지장이 있었을 것이며
그리고 명의 변경 등기도 꼭 해두어야할 당위성(當爲性)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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