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中年)에 시련(試練)을 배태(胚胎)
얼마 후 구미에서 서울로 옮겨 갔고, 회사(삼성)에서 과장 진급과 일이 무척 힘든다는
소식도 듣고 있었다. 이제 평사원은 면했다고 생각했다.
장래문제를 깊이 고민해 본 끝에 선택한건지 삼성을 그만 두고 처가집 회사에 들어 갔다는
기별이 왔다. 충분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사돈의 막내는 아직 유학중이고...
내심으로 아들, 며느리, 손자와는 더 소원해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것도 세상 탓! 너의 인생
이라면 따라 갈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회사는 성장일로(成長一路)에서 순항(順航)을 거듭 하는듯 했다. 그 시기에는 회사에서의
생활이 좋았고 편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한집에서 회장을 모시고 사는 처지이기도 했고......
회사를 나온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돈의 애석한 별세가 주인(主因)이지만 회사로
들어간 그 입사(入社)가 너의 중년(中年)을 망쳐 놓은 액운(厄運)이 될 씨앗을 뿌린 셈이
됐으니 한번 뿐인 인생인데 통탄(痛嘆)할 일이다. 시행착오(試行錯誤)란 있을수 있지만
이것은 우리 집의 모든것을 삼켜버릴 "불랙홀"이 됐다.
아들 하나를 위해 지극정성 다 받친 엄마의 심려(心慮)가 늘 안스러웠다.
회사에 들어 간 것이 경솔한 결정은 아닐 것이라고 아들을 믿는 마음이 더 컸었는데........
어느 해인가 사돈의 7순잔치? 중국 음식점에서 가족과 함께한 만찬에 초대 받아 간 일이
있었다.
이날 잔치의 사회(司會)는 아들이 (사돈이 박서방 하라고 시켰었다) 봤다.
이날 사돈도 기분이 좋았던 날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대화중에 기억에 남아 있는것은 "서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니 그 아들들의 장래는
사돈이 맡고 있다."고 장래 까지 돌봐야 한다고 말을 했었고, 사돈은 "사위도 같은 자식인데
당연한 이야기"라고 긍정적으로 받아 다짐 했었다.
또 "이제 우리는 늙었으니 경영도 점차 이들에게 맡기고 해외여행이나 같이 다니자"고 하시
기에 "그 말씀 꼭 기억하고 기대 하겠다"고 웃으면서 화답 했었다. 좋은 자리에서 흐뭇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대화들이 즐거웠고 기억에 남아 있다.
아마 그것이 사기업체(私企業體)를 운영하는 사돈의 본심이요, 장래 설계였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보통 가정과는 달리 키운 아들, 며느리, 손자에 대한 모든 것은 사돈에게 맡겨지게 된 셈이
되고, 나는 잘 되기만을 빌면서 멀리 떨어져서 바라만 보는 존재로 전락한 처지가 됐었다.
사돈과는 그 이전 부터 대구 오시면 가끔 점심 초대도 받았고 사돈간의 교류는 이어오고 있
었다. "홍건개발" 이야기(그 뜻도)도 사돈을 통해 들었고 .... 사돈간이지만 조심스러운 가운데
말이 잘 통했고 편하게 잘 지냈다고 생각된다.
만나면 내아들 걱정도 더러 했고 40억 공사 따냈다는 이야기, 규모가 더 큰 공사 낙찰 이야기
도 들었었다.
세월이 흘러 사돈의 아들도 회사에 들어 오고 조금식 회사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 왔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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