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りょう~坂本龍馬より~-島津亜矢 作詞 星野哲郎 作曲 村沢良介
一 燃えて火を吐く 男の夢に 惚れる女も 命がけ 華の友禅 桔梗の帯に 好きな 好きな龍の字 一文字入れて 影を支える…京おんな
セリフ 「男まさりのおりょうが 初めておんなに生まれたしあわせを感じさせて貰いました 龍馬さま…あなたを好きになる女はみーんな私の仇です 誰も好きにならないで… おりょうは あなたの血のひと滴となって…散りたいのです…」
二 加茂の川原を 流れる水は 人のさだめに 似て哀し たとえ短い 月日であろと 好きな 好きなあなたと 結んだ契り 生きて甲斐ある…おんな町
セリフ 「国が生まれ変わる為には 誰かが死な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か… 春の嵐に散り急ぐ花の様に 命を惜しまずあなたも散ってゆくのですか… 龍馬さま…龍馬さま…」
三 龍馬いのちの 維新のおんな 散るを 散るを惜しまぬ おりょうの心 月もご存じ…嵐山
坂本龍馬 우리 쪽에서 “日本人들이 가장 좋아하는 歷史 속 人物은 누구입니까?" 라는 質問을 했다면. 나는 日本의 戦国時代 英雄 中 한 名일 것이라 짐작하면서 곁에 있던 中 日本側 人士는 “坂本龍馬(さかもとりょうま) 입니다"라는 答을 합니다. ‘坂本龍馬?’
韓國에 잘 알려진 日本의 歷史的인 人物이라 하면 韓國을 侵略했던 豊臣秀吉,日本의 戦国時代를 平定하고 江戸幕府를 열었던 德川家康 또는 朝鮮總督府의 初代 總督이었던 伊藤博文 等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人氣가 있는 李舜臣 將軍에 對해 日本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것처럼 坂本龍馬도 韓國에는 別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日本에서는 初等學生도 알만큼 有名합니다. 最近 日本經溶新聞에서 初等學生을 對象으로 ‘最も好きな歷史的人物’을 照査한 結果 1位는 坂本龍馬가 차지했습니다.
坂本龍馬는 高知地方의 商人집안에 태어나 劍術을 배운 後 큰 뜻을 품은 채 지금의 東京인 江戸로 留學을 떠나 오지만 한 동안은 狀況을 살피며 浪人 生活을 하게 됩니다.
後에 航海術을 배우고 ‘海援隊’라는 貿易會社 兼 政治結社를 組織합니다. 그리고 새 時代를 열고자 하는 熱望은 같았으나 힘겨루기만 反復하던 長州藩과 薩摩藩의 사이를 調停해 同盟을 맺을 수 있도록 힘을 씁니다. 結局 두 藩은 바로 決裂됐지만 江戸幕府를 無血로 屈伏시키고 明治時代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一助합니다. 나아가 自身이 만든 海援隊를 ‘世界的な海援隊’로 만들고자 했으나 그 뜻을 다 이루지 못 한 채 33살이라는 한창 젊은 나이에 暗殺되고 맙니다.
混亂期였던 江戸幕府 末期에는 龍馬 外에도 많은 이들이 歷史를 바꾸는데 寄與했으며 ‘亂世에는 英雄이 있다’는 말처럼 英雄 誕生의 適期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왜 坂本龍馬가 第一 人氣 있는 人物이 되었을까요? 그 背景에는 司馬遼太郎(しばりょうたろう)가 쓴 「龍馬が行く」라는 歷史小說이 있습니다. 現在;龍馬の英雄 像은 거의 이 小說이 土臺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龍馬が行く」60年代(1963~1966年)에 發表되었는데 아직도 이 作品을 愛讀書라고 말하는 政財界의 有名人士들이 많습니다.
그 後로도 많은 書籍,漫畵 等을 通해 坂本龍馬라는 人物이 浮刻되었으며 또한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도 많습니다. 2010年 1月부터 NHK에서는 最高의 株價를 달리고 있는 美男俳優 福山雅治(ふくやままさはる)가 主人公인 大河드라마〈竜馬伝〉을 放映해 最近 다시 한번 龍馬가 注目을 받고 있습니다. 自動車 會社인 ダイハツ工業은 TV 廣告에서 歌手 SMAP의 香取慎吾(かとりしんご)를 坂本龍馬로 粉粧시켰고 소프트뱅크의CM에도 龍馬가 登場합니다. 書店에 가봐도 그와 關聯된 書籍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또 日本 全國에 124個,世界的으로는 130個의 ‘龍馬会’가 있다고 합니다. ‘龍馬会’는 龍馬의 功績을 讚揚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年에는 그들만을 爲한 信用카드도 만 들어졌습니다.
그는 現在 이렇듯 굉장한 人氣를 얻고 있지만, 정작 2000年까지도 貿易 黑字는 如前했으며,2007年 末에 그가 暗殺되었을 當時에는 많은 注目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어난 世界的인 經題危機까지는 그럭저럭 잘해나가는 하물며 明治時代에 들어서 功績을 論할 때에도 그의 이름은 빠져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注目을 받은 것은 1883年 그의 故鄕인 高知의 ‘土陽新聞(どようしんぶん)’에 그를 主人公으로 한 小說이 連載되기 始作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後 다시 龍馬붐 이 일어난 것은 러일戰爭(1904-1905) 때였습니다. 坂本龍馬가 日本 王妃의 꿈에 나타나 “私が海軍を守ります"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內容이 다시 新聞에 揭載되면서 龍馬의 人氣가 올라갔습니다. 더구나 러일戰爭에서는 日本이 海戰에서 大勝을 거두었기 때문에 더 信憑性이 있었던 것입니다.
龍馬 生前에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龍馬가 죽은 後 日本은 近代 國家로 큰 轉換을 합니다. 鎖國 政治를 펼치던 江戸幕府는 사라지고 明治維新이 始作됩니다. 日本은 西洋文明을 받아들이기 始作했을 뿐 아니라 列强의 하나가 되어 世界 舞臺에 서게 됩니다.
비록 無謀하게 世界 大戰에 參與하긴 했지만 엄청 난 敗北를 맛본 後에는 軍國主義를 벗어 던지고 오로지 經濟 發展에 힘을 쏟았으며 그 結果 世界 2位의 經濟 國家가 되었습니다. 勿論 그 사이에 ‘經濟的 動物’이라는 非難도 받았지만,90年代 初 거품 經濟가 崩壞되기 前 까지만 해도 高度 成長을 通해 쭉쭉 뻗어나가는 나라였습니다. 거품經濟가 무너진 後 ‘잃어버린 10年’이라 불리던 지금 日本에서는 다시 한 번 坂本龍馬가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理由는 어찌 보면 뻔합니다. 지금 日本은 經濟的으로 매우 停滯되어 있습니다. 最近 1-2年 사이의 일이 아니라 이미 90年代 初盤부터 무너지기 始作했습니다.
‘富者는 亡해도 三代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日本의 經題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多幸스럽게도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할 만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거리에는 露宿者가 생기고, 젊은 白手 層들은 할 일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延命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戰爭을 할 수는 없지만 戰爭 代身에 澤했던 經濟 競爭에서도 슬슬 밀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워크맨의 代名詞 SONY는. MP3에서는 音質이나 性能이 越等한데도 不拘하고 아이 맛에 밀려 販賣는 低調합니다. 렉서스로 日本 自動車의 自尊心을 지키던 トヨタ도 現在 리콜 問題로 힘든 局面에 處해 있었지요.
이런 經題 危機 속에서 自身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다시 한번 일어서기 爲해서는 坂本龍馬처럼 未來를 내다볼 줄 알고 世界 舞臺에 설 수 있는 사람이 切實히 必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龍馬를 그리워하며 그 와 같은 人物이 나타나 다시 日本을 일으켜 주기를 渴望하는 것 같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