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恋吹雪-大川榮策///忠犬ハチ公の話

bsk5865 2012. 7. 23. 08:40

보낸사람: 소담 엔카 운영자 12.07.23 06:29

 

恋吹雪-大川榮策///忠犬ハチ公の話(D)|★....엔카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1193 


恋吹雪-大川榮策


恋吹雪-大川榮策

作詞 吉岡治 作曲 市川昭介


あなたが浴びる 湯の音が
せせらぎみたいに 聴こえます
ゆきずりの ゆきずりの ああ 夢一夜
堕ちてみたって かまわない
燃えて散れ散れ 恋吹雪

陽なたのような その胸に
一生棲むのは 無理なのね
つかのまの つかのまの ああ 夢一夜
声を殺して 指をかむ
おんな心の 恋吹雪


寝息をたてる 横顔に
ネオンがこぼれる 仮の宿
抱きしめて 抱きしめて ああ 夢一夜
朝になるまで 酔わせてよ
おとぎばなしの 恋吹雪


忠犬ハチ公の話

東京渋谷で最も有名な待ち合わせ場所と言えば、忠犬ハチ公像前です。いつもたくさんの人で賑わっています。このハチ公は本当に実際した秋田犬です。

1924年、ハチは一歳の時、東京の上野英三郎博士の家にもらわれます。上野英三郎博士は、駒場にある帝国大学(今の東京大学)農学部の先生でした。

いつからかハチは渋谷駅、または大学の農学部校門へ博士を送り迎えし始めました。日によって朝見送った場所と、夕方迎えに行く場所が違っても、その場所をよく覚えていました。雪の朝の見送り、寒風の夜の出迎え、ハチの送迎は続きました。

ところが、1925年5月に上野博士が亡くなりました。ハチは博士の死を知らず、夕方農学部校門に行き、暗くなるまで待ちましたが、博士は帰ってきません。博士のにおいを求めて遺留品の置いてある物置へ入り、そのまま3日間、何も食べませんでした。

主人の急死で、結局ハチも転転とさせられます。日本犬保存会の斉藤さんは、ハチが農学部まで上野博士を迎えに来ているのを時々見かけて大変立派ないい犬だと思い、覚えていました。斉藤さんは何とかハチの悲しい事情を人々に知らせたいと考え、朝日新聞に寄稿したところ、その記事が大きく取り扱われました。そして1934年3月には、日本青年館で「ハチの銅像建設基金募集のタべ」が開かれ、三千人の人が有名な忠犬ハチ公を一目見ょうと集まりました。

1935年3月8日、ハチはその幸うすい一生を終えました。普段行かなかった駅の反対でひっそりと死んでいたそうです。現在、上野博士と共に青山墓地で眠っています。


東京渋谷에서 가장 有名한 約束 場所하면, 忠犬 ハチ銅像 앞입니다. 늘 많은 사람들로 붐벼죠. 이 犬公 ハチ는 實際로 存在했던 秋田犬입니다.

1924年,ハチ는 한 살 때 東京의 上野英三郎博士 집으로 보내집니다. 上野英三郎博士 는 駒場에 있는 帝国大学(지금의 東京大学)農学部 敎授였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ハチ는 渋谷駅 또는 大學의 農學部 校門으로 博士를 마중하고 배웅하러 가가 始作했습니다. 날에 따라 아침에 배웅한 場所와 자녁에 마중 나간 場所가 달라도 그 場所를 잘 記憶했습니다. 눈오는 아침의 배웅,찬바람 부는 밤의 마중,ハチ의 배웅과 마중은 繼續되었습니다.

그러나 1925年 5月 上野博士가 世上을 떠났습니다. ハチ는 博士의 죽엄을 모르고 저녁에 農學部 校門에 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지만 博士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博士의 體臭를 찾아서 遺品이 놓여 있는 헛간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結局 ハチ도 아곳저곳으로 轉轉하게 됩니다. 日本 土種犬 保存會의 斉藤 氏는 ハチ가 農學部까지 上野博士를 마중 오던 것을 가끔 보고 정말 훌륭한 좋은 개라고 생각해 記憶하고 있었습니다. 斉藤 氏는 어떻게든 ハチ의 슬픈 事情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朝日新聞에 寄稿했는데,그 記事가 크게 다뤄졌습니다. 그라고 1934年 3月에는 日本靑年館에서 ‘ハチ銅像建立 基金募集의 밤’이 열려,有名한 忠犬 ハチ를 한 번 보려고 3千名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1935年 3月 8日, ハチ는 그 不運한 一生을 마쳤습니다. 平素 가지 않던 驛의 反對쪽에서 조용히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只今은 上野博士와 함께 青山墓地에 잠들어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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