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笠道中-東海林太郞 作詞 藤田まさと 作曲 大村能章
一 夜が冷たい 心が寒い 渡り鳥かよ 俺らの旅は 風のまにまに 吹きさらし
二 風が變れば 俺らも變る 仁義雙六 丁半かけて 渡るやくざの たよりなさ
三 亭主もつなら 堅氣をおもち とかくやくざは 苦勞の種よ 戀も人情も 旅の空
四 情ないぞえ 道中時雨 どうせ降るなら あの娘の宿で 降っておくれよ しんみりと
天守閣には城主がない? 日本의 城은 우리나라의 城과 비슷한 構造로 되어 있지만 天守閣(てんしゅかく)나 御殿(ごてん) 櫓(やくら)처럼 전혀 다른 目的으로 세워진 建物도 있습니다.
우선 日本人이든 韓國人이든 日本의 城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天守閣입니다.
天守閣는 殿主, 天主라는 말에서 由來되었다는 說이 가장 有力하며 天守는 城의 中心이 되는 建物들의 總稱으로 그 中에서도 가장 中心이 되는 建物에 望樓를 設置하고 監視塔이나 戰時의 司令塔 弓手와 鐵砲隊의 配置場所 等으로 使用하다가 漸次 天守閣으로 發展시켜 나가 城을 象徵하는 建物이 되었다고 합니다
平常時에는 武器庫 等으로 使用되었으며 織田信長(おだのぶなが)가 安士城(あづちじょう)에 5層과 7層의 天守閣을 만들면서 大型化된 建物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歲月을 거치며 戰亂과 天災地變 等으로 因해 大部分의 天守閣이 燒失되고 築城 當時의 原形을 그대로 간직한 것은 12個 程度에 不過합니다.
天守閣의 龍마루에는 호랑이를 닮은 머리에 등에는 뾰족한 비늘이 서 있고 꼬리를 곤두세우고 있는 傳說의 動物 鯱(しゃちほこ=용마루 양끝에 裝飾하는 動物相으로 머리는 호랑이 몸은 물고기)가 裝飾되어 있는데 原來는 빗물이 龍마루를 타고 들어오는 것은 막기 爲한 目的으로 設置하였지만 눈에 잘 띄는 곳에 位置하고 있기 때문에 漸次 裝飾用으로 發展하게 되었습니다.
一種의 天守閣이라고 할 수 있는 櫓(やくら)는 原來 失倉 失藏 等으로 썼는데 글자 그대로 활을 保管하던 곳입니다 크게 城壁 모서리에 세워진 隅櫓(すみやぐら)와 긴 용마루로 지은 多聞櫓(たもんやぐら)로 나위는 데 前者의 境遇는 主로 武器庫의 役割을 했으며 戰時에는 監視塔 等으로 使用되었습니다.
後者는 倉庫로 쓰기 爲해 지어졌지만 姬路城(ひめじじょう)나 松山城(まつやまじょう) 等에서는 天守閣을 連結하는 通路 役割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天守閣이 城이라는 것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誤解하고 있는 또 하나는 城主가 天守閣에서 居住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城에는 天守閣 以上으로 重要한 建物인 御殿이 있는데 城主가 居住하면서 政務를 보거나 日常生活을 하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御殿 亦是 戰亂과 天災地變 等으로 大部分 燒失 되었는데 城을 再建할 當時 御殿보다는 天守閣에 優先 順位를 두었기 때문에 現在 볼 수 있는 御殿은 드뭅니다.
代表的인 御殿에는 二条城(にじょうじょう)의 二の丸御殿(にのまるごてん)과高知城(こうちじょう)의 本丸御殿(ほんまるごてん)等이 있습니다.
特히 二条城의 二の丸御殿은 外部로부터 侵入에 對備하여 마룻바닥 아래로 걸쇠를 設置하여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 한 “うぐいす張り(휘파람새)”로도 有名합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