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十三夜-榎本美佐江///歌の背景

bsk5865 2014. 3. 2. 09:54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03.02 06:06

 

十三夜-榎本美佐江///歌の背景(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4702 


十三夜-榎本美佐江


十三夜-小笠原美都子

十三夜-榎本美佐江

作詞 石松秋二 作曲 長津義司


河岸(かし)の柳の行きずりに
ふと見合わせる顔と顔
立ち止まり 懐かしいやら嬉しやら
青い月夜の十三夜


夢の昔よ 別れては
面影ばかり遠い人
話すにも何から話す 振袖を
抱いて泣きたい十三夜


空を千鳥が飛んでいる
今更泣いてなんとしょう
さよならと こよない言葉かけました
青い月夜の十三夜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41年(昭和16年),第二次 大戰 開戰의 해에 発売된 辺頭里 情緖가 듬뿍담긴 傑作입니다.

作詞者 石松秋二는, 「満州娘」「九段の母」 等, 戰爭 前• 戦中 派에게는 그리운 노래를 많이 作詞하였습니다. 終戰 時에, 侵攻해 온 蘇聯軍에 依해 殺害되었습니다.

作曲의 長津義司는 法政大学 出身으로 企業에 就職한 뒤, 作曲家로 転身하여. 1939年(昭和14年), 田端義夫의「大利根月夜」를 크게 히트시키고 그 後에도, 淡谷のり子의「君忘れじのブルース」等을 크게 히트시켰습니다.

1956年(昭和31年)에는, 三波春夫의 데뷔 曲「チャンチキおけさ」로 大히트를 올렸습니다. 그 後, 三波春夫와 함께, 歌謡曲의 Melody에 浪曲(義理나 人情)을 언져 노래한 大衆的인 新 genre도 開拓했습니다. 그 genre의 히트曲이, 「元禄名槍譜 俵星玄蕃」입니다.

이 노래의 原唱은 1941年에 小笠原美都子가 노래하였는데. 當時 大히트까지는 가지 못하고, 그 後 잊어지고 있었습니다만, 1947年에 新東宝 映画「東宝千一夜」에 代役으로 急遽 出演하게 된 新人 歌手 榎本美佐江에가 레퍼터리가 없는 所屬 레코드 會社의 TEICHIKU에 相談했는데「この歌はどう?」라고 勸誘를 받아 劇中에서 노래했는데 大評判이 되어「榎本の十三夜か、十三夜の榎本か」라고 稱해질 때까지의 것이 되었습니다.

다만, Record 吹込 은 榎本가 Record 會社를 移籍한 的도 있어, 當時는 되지 않고, 結婚/引退/離婚/復帰을 거듭해 1965年까지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日本調의 아름다움, 그리고 덧없음을 숨긴 曲으로서 지금도 日本 춤 等의 춤의 發表會에서 使用되는 等 뿌리 깊은 人気를 느리고 있습니다.

여기 10年만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면, 이미 그는 죽었다고 합니다.「榎本美佐江」는 埼玉県 川口市에서 1923年 3月 13日에 태어났습니다. 本名은「榎本ミサエ」입니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10歲 때에 浅草의 劇場主가 사는 곳에서 雇傭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1934年의 무렵입니다. 그가 14歲인 1938年에 石川県의 能登에서 妓生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0秊에 東京으로 옮기고, 日本 歌謠 學院에서 노래를 배워, 戰時에 工場이나 軍隊의 慰問 等으로 돌았습니다. 그리고 戰後인 1946年에 戰爭 前, 小笠原美都子가 히트 시킨「十三夜」를 히트 시켰습니다만, 時代의 흐름이 바뀌어 別로 時流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1941年에 新東宝에서「ぼんぼん」의 家政婦役으로 映畵에 데뷔해, 以後 數많은 映畵에 出演하였습니다. 1949秊에 Victor로 移籍해, 다음 해의 Hawaii 興行에는 妓生 모습으로 노래해 큰 喝采를 받았다고 합니다.

1952年에는, 鶴田浩二와 Duet한「弥太郎唄旅」가 크게 히트하고, 다음 해에 東映映画「女難街道」의 主題歌「お俊恋唄」를 크게 히트 시켰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