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の夜風-神戸一郎 青山和子 作詞 西條八十 作曲 万城目 正 オリジナル歌手 霧島 昇, ミス. コロムビア
一 花も嵐も 踏み越えて 行くが男の 生きる道 泣いてくれるな ほろほろ鳥よ 月の比叡(ひえい)を 独り行く
二 優(やさ)しかの君 ただ独り 發(は)たせまつりし 旅の空 可愛い子供は 女の生命(いのち) 何故に寂しい子守唄
三 加茂の河原に 秋長(あきた)けて 肌に夜風が 沁みわたる 男柳が なに泣くものか 風に搖れるは 影ばかり
四 愛の山川 雲幾重(くもいくえ) 心ごころは 隔てても 待てば來る來る 愛染かつら やがて芽を吹く 春が來る
平和を祈願する都市 ‘広島’二
平和記念公園 이름 그대로 原爆으로 因한 死亡者의 넋을 慰勞하고 世界 平和를 祈願하며 만든 公園입니다. 公園 內에 世界遺産으로 指定된 原爆 돔과 平和紀念資料館 多數의 記念碑와 慰靈碑가 있습니다.
原爆犧牲者慰靈碑는 原爆으로 犧牲된 사람들의 넋을 慰勞하는 慰靈碑로 広島 平和記念 資料館과 原爆 돔을 잇는 直線 위에 設置되어 있습니다. 윗部分이 지붕처럼 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國內外에서 死亡한 原爆 被爆者의 이름이 記載된 名簿가 들어 있는데,2008年 8月 現在, 25万 8310名으로 每年 追加되고 있습니다.
또한 平和記念 公園 內에는 强制 徵用되어 原爆으로 犧牲된 7000余 名의 韓國人을 慰勞하는 韓國人 犧牲者 慰靈碑가 있는데 碑石과 자갈까지 모두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資材를 使用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原爆 子供の像 少女가 두 팔로 종이 鶴을 받치고 있는 銅像이 세워 진 塔으로 被爆으로 因한 白血病으로 死亡한 少女가 鶴을 접으며 病이 낫기를 祈願한 것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周圍에는 日本 全國에서 보낸 종이 鶴이 展示되어 있으며,內部에는 鍾이 있어 風磬처럼 소리가 납니다.
原爆ドーム 元來는 広島의 商品을 展示하거나 委託 販賣 하던 곳이었는데,原爆 投下 當時의 强한 바람과 熱에 依해 3層 建物의 大部分이 破壞되고 中央 돔과 外壁만이 奇蹟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原爆의 慘死가 聯想된다는 理由로 없애야 한다는 意見도 있었지만 1966年부터 保存運動이 始作되어 1996年에 유네스코의 世界遺産으로 登錄되었습니다. 崩壞 危險이 있어 밖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宮島 松島(まつしま) 天橋立(あまのはしたで)와 함께 日本 3大 絶境으로 꼽히는 섬으로 오랜 옛날부터 神이 머무는 섬으로 崇拜되어 왔습니다. 宮島口(みやじまぐち)駅을 거쳐 배에서 내리면 섬 안에 放牧하는 사슴들이 가장 먼저 歡迎을 해 줍니다.
參拜路에는 各種 工藝品을 파는 가게와 이 地方의 土俗飮食店 들이 있으며.神社 뒤에는 原始林을 자랑하는 弥山(みせん)도 있습니다.
日本 全國에 있는 約 500個 厳島神社의 總 本山이자 1400年의 歷史를 자랑하는 神社로 平安時代 末期에 平 淸盛(たひらのきよもり)가 지금의 形態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厳島神社의 ‘大鳥居(おおとりい)’는 宮島의 象徵일 뿐만 아니라 日本을 代表하는 風景으로도 有名한데, 바다 위에 있는 特性上 부서지고 復元하기를 反復해 지금의 大鳥居는 1875年에 建立된 지 8代째로 높이는 16.8m 重量은 約 60톤이라고 합니다. 新奇한 点은 땅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自體무게로 서 있다는 것. 썰물 때는 直接 近處까지 걸어가 볼 수 있습니다.
厳島神社는 貴族時代의 象徵인 寢殿 建築樣式으로 지어져 約 280m의 긴 回廊이 이어져 있는데 鮮明한 朱 紅色의 기둥 사이로 瀬戸内海의 景致가 보여 마치 배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또한 8月 中旬에는 神社의 앞바다에서 水上 불꽃놀이가 開催되어 壯觀을 이룹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