しぐれ川-山川豊 作詞 吉田旺 作曲 徳久広司
一 春にそむいて しぐれ川 ふたりこぎ出す 情け舟 抜いた指輪を 川面に投げて これでわたしは あなたのものと すがるおまえを 離しはしない
二 着のみ着のまま ほつれ髪に せめてひとひら 花吹雪 明日の夢さえ 見えないけれど こころ通わす ぬくもりあれば 生きて行けると ほほえむおまえ
三 にごり川でも いつの日か 陽光きらめく 海に出る 死ぬも生きるも ふたりと決めた 恋のさだめが 指さすままに ゆれて流れる あゝしぐれ川
Travel spot 水郷柳河 福岡県 柳川(やながわ)는 우리나라에는 그리 有名하지 않지만 餘裕롭고 素朴한 雰圍氣를 느낄 수 있어 日本人들이 많이 찾는 觀光地입니다.
都市 곳곳으로 水路가 뻗어 있어 ‘日本의 베니스’라는 別名으로도 有名한데, 작은 쪽배를 타고 日常 속에 녹아든 水路를 따라 뱃놀이를 하다 보면 世上 걱정이 모두 잊혀 질 듯하네요.
또한 代代로 이 地方을 다스려온 立花(たちばな) 家門의 別莊인 御花(おはな), 詩人 北原白秋(きたはらはくしゅう)와 關聯된 事蹟, 장어와 미꾸라지 等으로 만든 別味도 有名합니다.
柳川へgogor 福岡 市內에서 柳川로 移動할 때는 西鉄(にしてつ) 電鐵을 利用하는 것이 가장 便利합니다. 大牟田(おおむた)行 特急을 타면 45分程度 걸리는데, 交通便,飮食, 뱃놀이 等을 連繫한 多樣 한 티켓을 販賣하고 있으나 選擇해 購入하면 더욱 低廉합니다. 티켓은 西鉄 電車駅에서 販賣하며,驛務員에게 보여주면 各 驛에서 도장을 찍어줍니다.
柳川 川下り 柳川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뱃놀이(川下り)입니다. 嚴密하게 말하면 江(川)이 아니라 옛 柳川城(やながわじょう)을 둘러싸고 있는 水路를 따라 내려가는 것인데,470 Km에 이르는 넓고 좁은 水路를 따라 생겨난 물의 都市 만의 獨特한 風景을 즐길 수 있습니다.
觀光地의 華麗함보다는 水路 옆으로 펼쳐지는 日常的인 風景이 더욱 印象的인데 이러한 情緖는 詩聖으로 尊敬 받는 詩人 北原白秋(きたはらはくしゅう) 等 많은 文人들에게 靈感을 提供했습니다.
뱃놀이를 하려면 먼저 柳川駅에서 車로 3分距離에 있는 乘船場으로 移動해야 하는데,駅 앞에 待機하고 있는 車輛에 搭乘하면 乘船場까지 案內해 줍니다.
뱃놀이 運行 時間은 午前 9時부터 午後 5時까지, 夏節期에는 午後 5時 半까지로 코스는 乘船場에서 始作해 城의 水門을 지나 内堀(うちぼり)라고 불리는 水路를 따라 約 4.5 km 거리를 70分 동안 내려가는데 各 名所를 지날 때 마다 사공이 解說을 해주거나 구성진 노래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柳川를 다스리던 領主의 邸宅인 御花(おはな)나 沖端(おきのはた)에서 下船할 수 있으며 柳川駅으로 돌아갈 때는 時間이 맞을 境遇 셔틀버스를 그렇지 않은 境遇에는 버스나 택시를 利用해야 합니다.
柳川城 水門뱃놀이를 始作하는 入口로 城의 防禦用으로 築造된 水路로 들어가는 水門입니다. 물의 城이라고도 불린 柳川城은 萬一의 事態가 發生했을 境遇 水門을 닫고 上流의 堤防을 무너뜨려 城 밖을 水沒시키는 構造였다고 합니다.
北原白秋 日本의 近代文學에 偉大한 발자국을 남긴 詩人 北原白秋는 1885년, 柳川에서 酒造業을 하는 北原 家門의 長男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文學에 才能이 있었으나 16歳때에 집이 火災로 불탄 後에는 傷心한 마음을 創作으로 돌려 作品活動에 邁進했습니다.
早稲田大学 英文科에 進學한 白秋는 文學雜誌 明星(みょうじょう)에 參與했고 1909年에 첫 詩集 ‘邪宗門(じゃしゅうもん)’ ‘思ひ出(おもひで)’ 等을 發表하며 詩壇의 第1人者로 活躍하게 됩니다.
白秋는‘水郷柳河 こそは、我が生まれの里である。この柳河こそは、我が詩歌の母體である(물의 고장 야나가와야 말로, 내가 태어난 고장이다. 이 야나가와야 말로, 나의 시의 모체이다’라고 말할 程度로 柳川를 사랑했으며 柳川의 風景을 담은 詩를 많이 남겼습니다.
白秋 生家• 記念館은 釀造場을 하던 白秋의 生家는 불에 타 大部分이 燒失되었지만 1969年에 復元해 白秋의 著書나 遺品 登을 展示하는 記念館으로 使用하고 있습니다.白秋의 詩碑는 白秋가 故鄕을 그리며 쓴 마지막 詩 帰去来(ききょらい)를 새긴 詩碑로 全國的으로 募金을 實施해 白秋의 母校인 失留(やどみ) 小學校 近處의 白秋 詩碑院에 建立했습니다.
御 花. 柳川 地方의 領主였던 立花(たちばな)家門의 邸宅으로 明治 時代에 西洋館을 비롯한 建物을 지어 지금의 形態가 되었습니다. 特히 松濤園(しょうとうえん)이라고 불리는 庭園은 日本 3大 絶景 中 하나인 仙台(せんだい) 의 松島(まつしま)를 본떠 設計했다고 하는데, 水路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만들고 老松을 심어 立體的으로 構成했습니다.
10月부터 4月 中旬까지는 철새 들이 찾아와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當時 建築 洋式이 잘 나타나 있는 本館과 領主가 居住하던 房은 宴會場과 料亭으로 利用되고 있어 多樣한 料理를 맛볼 수 있으며, 管內의 記念館에서는 立花 家門에 傳해 내려오는 寶物이나 江戶 時代의 遺物을 볼 수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