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謠背景函

서울야곡-현인///徐熙

bsk5865 2014. 11. 27. 08:37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4.11.27 06:29

 

서울야곡-현인///徐熙(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6291 


서울야곡-현인


서울야곡-현인

작사 유호. 작곡 현동주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엔 한숨이 흐렸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네거리에 버린 담배에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는다


徐熙

자; 염윤(廣允)
시호; 장위(章威)

생애와 업적

993년(성종 12) 거란의 80만 대군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당시 고려군은 전국에 있는 병사를 다 합쳐도 30만에 불과했다. 건국 75년 만에 국운이 위협받게 되었다.

몽골계 유목민족인 거란은 당시 ‘요(違) 를 세우고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요는 중원의 송나라를 압박하면서 고려와 여진을 위협했다.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천명 (關明)하고 북진정책을 추진하던 태조 왕건이 친선을 요구하며 온 거란의 사신 30명을 섬으로 유배 보내고 함께 보낸 낙타 50필을 굶어 죽게 했다는 기록이 전하듯 고려와 거란은 오랜 원한을 갖고 있었다. 발해에 대해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취하던 고려 왕건으로서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친선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려는 오히려 송과 외교 관계를 맺었고,중원에서 송과 세력을 겨루던 거란은 이를 위기로 받아들였다.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은 단숨에 서북국경을 침입하여 봉산(逢山)을 함락시키고 서한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소손녕은 이 서한에서 자신들이 이미 빨R를 멸망시켜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고 있는데 고려가 자신들의 땅(고구려의 옛 영토) 일부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토벌하러 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내사시랑이던 서희는 이 서한을 보고 회의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성종에게 보고했다. 성종은 이몽전을 보내 화의를 타진했다. 하지만 소손녕은 “화의를 구하려거든 빨리 와서 항복하라”고 답할 뿐이었다. 이몽전이 돌아오자 성종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소손녕의 위압적인 태도에 겁을 먹은 고려 조정에서는 투항하지는 의견,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넘겨주자는 의견 등이 제기되면서 비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때 단호히 반대하고 나선 사람이 서희이다. 국토를 떼어 적에게 준다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저희들이 적과 한번 싸움을 해본 후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성종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편 이 무렵 소손녕은 고려가 답변을 빨리 하지 않는다고 안융진을 보복 공격했다가 실패한 뒤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한 채 항복을 독촉하고 있었다.

다시 신하들을 모은 성종이 물었다.

"거란 진영으로 들어가서 언변으로 적병을 물리쳐 만대의 공을 새울사람은없는가?’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서희가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不敏)하나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서희는 국서를 가지고 소손녕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소손녕은 “나는 대국의 귀인이니 그대가 내게 뜰에서 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희는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절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나,양국의 대신들이 대면하는 좌석에서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거절했다.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자 서희는 노하여 숙소로 돌아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서희의 인품이 비범함을 알아차린 소손녕이 당상에서 대등하게 대면하는 예식 절차를 승낙하면서 협상은 시작되었다.

소손녕이 먼저 말했다.

“당신의 나라는 옛 신라 땅에서 건국했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나라에 소속되었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이 침범하였는가? 또한 우리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우리나라와는 국교를 맺지 않고 송나라를 섬기는 까닭에 징별한 것이다. 땅을 떼어 바치고 국교를 회복한다면 무사할 것이다"

이에 서희가 반박했다.

“나라 이름이 고려이고 평양을 국도로 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가 고구려의 후계자이다. 그러니 오히려 당신네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한 것이다. 또한 여진이 교통을 차단하고 있어 국교를 맺지 못한 것이니 여진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옛 땅을 회복하여 성들을 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서희는 거란이 침략한 근본적인 이유가 과려와 송나라와의 국교를 단절시키고 자신들과 국교를 수립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압록강 유역의 우리 옛 영토를 되돌려주면 국교를 맺겠디는 조건을 제시했다.

소손녕이 거란 임금에게 이 내용을 전하자 고려가 이미 화의를 요청했으니 철군하라는 회답이 돌아왔다. 세치 혀로 거란의 대군을 물리친 것이다. 송나라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거란의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분석하고,또한 안융진 전투 이후 산악지대에서의 전투에 지신 감을 잃은 거란군의 상황을 읽어낸 통찰력,논리 정연한 언변,예의 바르면서도 당당한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손녕과의 담판 이후 서희는 이듬해부터 압록강 동쪽 장흥(長興,태천) . 귀화(歸化) . 곽주(郭州 곽산) . 구주(龜州,구성) 등에 강동 6주의 기초가 되는 성을 구축하여 여진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고구려 멸망 이후 처음으로 국경이 압록강에 이르렀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가인 서희는 광종 대의 대쪽 재상 서필의 둘째 아들로 942년(태조 25) 태어났다. 열아홉 살 되던 960년(광종 11)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내의시랑(內議侍郞)이 되었다.

외교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972년(광종23) 송다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부터이다. 여진과 거란에 육로길이 가로막혀 뱃길을 통해 어렵게 송나라에 도착했으나 송 태조는 이들을 반가이 맞아주지 않았다. 송나라가 건국된 지 10년이 넘도록 아무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고려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서희는 예의 바른 태도와 뛰어난 언변으로 송 태조에게 여진 과거란이 길을 막고 있어 그간 외교사절을 보내지 못했음을 설명했다. 서희의 태도에 감동을 받은 송 태조는 고려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으며,조칙(詔勅)을 내려 광종에게 식읍을 더해주고 서희에게는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尙書)라는 벼슬을 내렸다. 명예직이기는 하나 지금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소손녕과의 담판 이후 서희는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종1품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에 임명되었으나 996년(성종 15) 병을 얻어 개국사(開國寺)에서 오랫동안 치료와 요양을 했다. 이때 성종이 친히 가서 문병하고 어의 (御衣) 한 벌과 말 세 필을 사원에 나누어주고 개국사에는 곡식 1천 석을 하사했다. 개국사에서 요양을 하던 서희는 998년(목종 원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종 18년에 성종의 묘정에 배향에 배향되었고 덕종 2년 태사(太師)로 추증되었다.


평 가

서희의 담판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상세히 전한다. 한족인 송나라 대신 오랑캐인 거란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는 비난이 있을 법도 한 조선이지만,그들도 나라를 구한 서희의 외교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안정복은《동사강목》에서 “만약 대도수의 승리와 서희의 굴복하지 않는 의기가 없었더라면,화친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적의 끝없는 요구를 채우느라 갖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니,이 일은 후세에 거울로 삼을 만하다”며 칭찬했다.

한편,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자제들이 조정의 벼슬을 익히기 위해 하던 승경도라는 벼슬놀이가 있는데,이 놀이에서도 서희에 대한 당시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름난 정승이나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이 놀이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예조판서에 적합한 인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 바로 서희였다.

1918년 최남선이 작성한 만고도목에도 총리대신 을파소,궁내부대신 이제현,학부대신 설총 등과 함께 외무대신에 이름이 올라 있고 2003년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 드림내각 구성에도 외교장관으로 가장 강력하게 거론된 인물이 서희이니,예나 지금이나 우리 외교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作成者 黃圭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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