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国の街-舟木一夫 作詞 丘灯至夫 作曲 山路進一
一 名残りが燃える 心が残る ふたりでかえる アカシヤの道 今夜だけでも そばにいて 眺めていたい ひとつ星 ぼくたちだけの よろこびが住む 北国の街
二 ちいさな花を ひろった指と ほのかに恥らい 見あげた顔に たとえ別れが あろうとも 心はいつも 変らぬと 誓ってくれた 夜更の恋よ 北国の街
三 夜風がゆれる 灯りがうるむ 肩よせあるく アカシヤの道 ここでさよなら するけれど 明日もいい娘で いて欲しい ぼくたちだけの しあわせがある 北国の街
2千年 깊은 잠에 빠진 古都 金海 2千余 年 前 金海는 高句麗, 新羅, 百濟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金官伽倻가 燦爛한 歷史를 꽃피웠던 곳입니다. 마음을 열고 천천히 그곳을 돌아보면 너무 오래돼 잊어버린 歷史가 지금도 숨 쉬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神話나 文學 作品 속에 登場하는 主人公들을 만났을 있습니다
建國이야기나 너무 오래된 歷史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했고 證明 할 수도 없으니 神話 같은 古文獻의 記錄보다 오히려 텔레비전 大河 史劇이 더 그럴싸해 보입니다. 2千余 年 前 韓半島의 南쪽에 자리해 周邊國들과 힘을 겨뤘던 伽倻의 歷史도 그렇습니다. 歷史는 征服者와 統治者에 對한 記錄이기 때문에, 征服돼 사라져버린 國家에 對한 記錄이 많지 않은 것은 어쩌면 當然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金冠伽倻의 中心地였던 金海를 돌아보는 旅程에는 그래서 想像力이 必要합니다. 神話와 古代가요, 傳說같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遺跡地마다 깃든 歷史와 이야기를 大河史劇이나 映畵처럼 머릿속에 떠올리며 돌아보면 歷史 探訪은 더욱 興味로워집니다.
金海에서 가장먼저 訪問할 곳은 首露王陵입니다. 金海의 歷史는 勿論 韓國人의 10分의 1程度를 차지하는 ‘金海 金氏’ 의 歷史는 金官伽倻의 建國者인 首露王으로 因해 始作됐기 때문입니다
首露王陵 入口를 들어서자 神聖한 地域을 나타내는 홍살문이 正面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入口에서 王陵에 이르는 길인 ‘神道’ 을 따라 가자 2層 구조의 駕洛樓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駕洛樓의 오른쪽 門을 通해 들어서자 낮은 돌담 뒤로 커다란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덤 兩쪽으로는 文武人石과 말과 양, 호랑이 石像이 무덤을 지키고, 무덤 앞의 커다란 碑石에는 ‘駕洛國首露王陵’ 이란 글귀가 세로로 새겨져 있습니다. 三國遺事에 따르면 首露王은 西紀 42年에 태어나 157年間 나라를 統治하다 199年에 죽었다고 합니다.
首露王陵이 王陵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된 것은 朝鮮 世宗 때입니다. 1446年에 首露王妃陵과 함께 封墳의 四方 100步에 表石을 세워 陵域을 擴大했고, 宣祖 13年(1580)에는 床石과 석탄, 陵表 等 石物을 設置했습니다. 壬辰倭亂 때 盜掘을 當했으나, 當時 무엇이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首露王陵의 正門인 納陵正門의 대들보를 자세히 보면 印度式 搭인 흰색의 ‘스투파(Stupa)’ 兩쪽으로 흰색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雙魚門’ 과 코끼리가 있습니다. 이 紋樣은 印度 아요디아(아유타) 地方의 建築物과 自動車 番號版 等 多樣한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 首露王妃인 허황옥이 印度에서 건너왔다는 說을 뒤 받침하고 있습니다.
納陵正門 왼쪽으로는 崇善殿碑에 記錄된 駕洛國 歷史를 1927年 추려 새긴 ‘重建神道碑銘’ 을 비롯한 神道碑 3個가 서있고, 오른便으로는 首露王과 王妃의 神位를 모신 崇善殿, 駕洛國 2-9代 王과 王妃의 神位를 모신 崇安殿 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북아 거북아(龜何龜何)/머리를 내어라(首其現也) 내놓지 않으면(若不現也)/구워서 먹으리(播杓而碶也)’ ‘구지가(龜旨歌)’ 는 駕洛國 始祖의 탄강에 關한 古代歌謠 입니다. 三國遺事에 따르면 西紀 42年 하늘의 指示에 따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黃金알 여섯 個가 담긴 금합(金盒)이 내려왔고, 알에서는 여섯 貴公子가 나왔습니다. 이들은 10余 日 만에 9尺으로 자라났고,6伽倻의 王이 됐답니다. 이 中 가장 큰 알에서 나온 首露王은 金海 金氏의 始祖이자 金官伽倻의 建國者가 됐습니다.
駕洛國 誕生神話이자 古代歌謠의 舞臺인 龜旨峰은 首露王陵 北쪽의 國立金海博物館 뒤에 있습니다. 散策路를 따라 가면 龜旨峰 頂上에 오를 수 있는데 소나무가 두른 평평한 頂上中央에는 거북이 머리 模樣의 바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옛날 이 바위를 中心으로 사람들이 모여 하늘의 소리에 따라 노래를 불렀을 想像을 하니 自然스레 微笑가 감도네요. 바위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서 이내 소리가 들려오고, 黃金알이라도 내려올 것 같습니다. 敬虔한 雰圍氣에서 神靈스러운 氣韻이라도 받으려는지 하늘을 向해 두 팔을 벌리는 사람들도 볼수 있었습니다. 김해 市內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놓인 고인돌에는 韓石峯이 썼다는 ‘龜旨峰石’ 이 새겨져 있습니다.
國立金海博物館 反對 方向으로 龜旨峯을 내려가면 散策路는 首露王妃陵으로 이어집니다. 印度 아유타國에서 시집왔던 허황옥이 묻힌 곳입니다. 首露王妃陵의 位置에 對해서는 몇 가지 說이 있습니다. 故鄕 印度로 向하는 바다를 바라보는 곳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道敎 傳來 以前의 일이지만 風水地理上 좋은 자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許氏 根據地의 象徵的인 무덤이라고도 합니다.
陵의 오른쪽 아래에는 婆娑閣이 있습니다. 안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납작한 돌을 쌓아 올린 石塔이 서 있는데 許黃玉이 印度에서 배를 타고 올 때 風浪을 막아주는 役割을 했다고 합니다.
作成者 黃圭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