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富士山やぶさめ祭り-三波春夫///やぶさめ祭り

bsk5865 2015. 3. 5. 08:55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3.05 06:33

 

富士山やぶさめ祭り-三波春夫///やぶさめ祭り(D)|★....演歌 게시판

黃圭源  http://cafe.daum.net/enkamom/KTiH/6893 


富士山やぶさめ祭り-三波春夫


富士山やぶさめ祭り-三波春夫

作詩 沢登初義 作曲 山本丈晴


鹿の行縢(ムカバキ)きりりと締めて
弓矢かざせば いななく神馬
富士も晴れたよ 大原七郷
御室浅間 御室浅間
やぶさめ祭り


桜真盛り いざ御召覧
心ときめく やぶさめ太鼓
祭神木花 姫君様へ
よせる人波み よせる人波み
やぶさめ祭り


駒は甲斐駒 富岳の育ち
腕は武田の 筋金仕込み
満としぼった 鏑矢 鷹羽
甲斐の勝山 甲斐の勝山
やぶさめ祭り


やぶさめ祭り

冨士 御室 浅間神社의「流鏑馬(やぶさめ=말을 타고 달리면서 우는 화살로 과녁을 맞히는 武藝)神을 祭祀 지내는 일」은, 900年 以上의 伝統이 있어 八幡太郎 義家(源義家)의 同生, 新羅三郎義光(甲斐源氏의 遠祖)가「後三年의 役」의 戦勝을 祝賀해 奉納한 것으로부터 始作됩니다.

그 뒤 勝山을 中心으로 大原七郷의 親族에 依해 盛大하게 奉納되어 祭政一致의 時代를 만들었습니다. 明治의 改革인, 四民平等, 家格貴賎의 撤廃, 또 清日戦争 等으로 大原 七郷의 마을 出金이 좋지 않아 잦은 休止, 復活를 反復하면서 結局 明治30年을 最後로 中断하였습니다.

昭和55年4月에 84年 만에 다시 復活시켜 옛 式의 優雅한 「武田流やぶさめ」를 中心으로 住民 総 参加의 ふるさと祭り로서 毎年 開催되어 現在에 이르고 있습니다.

九月十九日 에 擧行(齋行)되는 이 祝祭는 同時에 富士山 二合目 鎮座의 小室 浅間神社의 附近 馬留ヶ馬場에서 行하여 지고 있어, 勝山村(現冨士河口湖町勝山)과 共同으로 奉仕하고 있었지만, 할 때마다 마을間의 싸움이 激烈하게 重捷되는 流血 騷動에까지 発展하는 것으로부터, 西暦一五三〇年(享禄三年) 武田家 家臣 板垣信賢의 達에 依해 各自의 마을에서 行하여 지게 되었습니다.

그 後 再三에 渡り馬場의 変遷이 있었지만, 現在의 競馬場은 明治 初年으로 부터라고 伝해집니다. 以來 現在에 이르나, 옛날의 時代 그대로, 朝夕役馬, 山王祭의 騎者 等의 옛 式이 伝해 지고 있습니다.

한便, 勝山村의 やぶさめ祭는 정말로 遺憾스럽지만 明治三〇年에 끊어지고, 昭和五十五年에 復興되나 武士의 流鏑馬로 変해 오랜 옛날의 歷史를 여기에서는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 流鏑馬祭り는 市 無形 民俗文化財로 指定되어, 一般的으로 알려져 있는 武士의 流鏑馬나, 他 神社 等에 奉納되는 것과는 다르며, 九月一日에 擧行되는 初馬揃式으로부터 始作되는 多數의 前儀와 함께, 奉仕者는 一週日間에 미치는 「切火」라고 불리는 嚴格한 淸潔히 함(世上 日常과 떨어져 祭祀者로서의 資格을 完成하고, 心身을 淸淨하게 하기 爲해서 틀어박히는 것)에 그 意義와 特色이 있습니다.

特히 말이 급히 달린 발자국에 依한 吉凶의 「말굽占」은 世襲의 「占人」의 存在와 함께 이 神을 祭祀 지내는 일을 著名한 것을 所有하고 있어, 日本의 文化的 源流를 가지는 貴重한 祝祭입니다.

每年 やぶさめ祭り가 끝나면, 親族区域 각 마을에서는 各各 神官을 招待하고, 流鏑馬祭り에서의 「말굽占」의 結果를 바탕으로 「お日待ち・秋葉講」이라고 불리는 祭禮를 行합니다.

마을 內 各 家庭은 祈願의 뒤, 한 장 작은 종이 늘어뜨림을 주고, 앞으로의 一年間 마을 內에 火災나 다툼의 禍가 없고 無事하게 지낼 수 있도록 祈願하는 行事가 11月 初旬 頃까지 繼續됩니다. (御日待ちとは=燃える火の事ではなく次の朝日、つまり夜を明かし神様に祈り、各班毎に「近所隣り同志で」様々な話をしながら朝日を待つ事です)

정말로 「村の祭り」는 옛날의 좋았던 「日本の村組織」을 지금에도 伝하는 貴重한 祝祭입니다. 또, 當 神社에 隣接한 下吉田 第一小学校에서의, 運動会에서는 やぶさめ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있어, 어린이들이 鄕土의 歷史를 熱心히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