鎌倉時代와 室町時代를 중세시대라 한다.
鎌倉時代는 1192년 源頼朝가 鎌倉를 근거지로 幕府를 설치하고 1333년에 막을 내릴 때까지를 가리킨다.
1185년 동생인 源義経가 壇ノ浦에서 다이라 일족을 물리친 후,頼朝는 천황에게 守護와 地頭의 임명권을 얻어 관리를 친(親) 막부 성향으로 교체해 자신 御家人 의 세력을 강화하였다 막부의 행정은 御家人이 담당했으며,将軍은 御家人 중에서 守護나 地頭를 임명하고,대신 御家人은 将軍에게 충성을 바치는 봉건적 주종관계를 형성했는데,이것이 鎌倉幕府의 지배 근본이 되었다.
1189년 義経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頼朝는 義経를 토벌하고,1192년 征夷大将軍이 되어 鎌倉幕府를 세웠다. 鎌倉幕府는 중앙의 귀족들인 公家 정권과 양립 체제를 이루는 반 독립적인 정권을 창출했다 그러나 3대 将軍이 암살되어 源 일족의 정통이 단절되면서,외척인 北条일족이 執権정치를 실시하게 되었다.이에 13세기 초 정권 회복을 위해,後鳥羽上皇이 막부 타도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막부는 황위 계승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세력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1272년과 1281년 두 번에 걸친 원나라의 침략에 대처하느라 재정이 악화된 막부는 출정한 御家人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내리지 못해 무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또한 北条가에서 御家人을 등용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무사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결과적으로 황위 계승에 개입하던 막부가 後醍醐天皇의 형에게 황위를 계승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자,이에 반발한 後醍醐天皇이 막부에 불만을 품고 있던 足利尊氏와 손을 잡고 군사를 일으켜 鎌倉幕府를 멸망시켰다.
鎌倉문화는 무사와 서민 중심으로 소박하고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란을 중심으로 한 軍記物語과 歴史物語 등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대표적인 군담소설에는 平가문의 흥망을 그린 平家物語가 있다. 또한 鎌倉불교의 성립으로 불교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鎌倉時代에는 농업기술도 발달하여,벼를 수확하고 난 뒤 보리를 재배하는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소와 말을 농사에 이용했으며,비료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室町時代는 14세기에서 16세기로,1338년 足利市가 京都의 室町幕府에 幕府를 세우고 통치한 것에서 명명되었다.
鎌倉幕府를 무너뜨리고 公家와 무사를 통일한 後醍醐天皇은 公家를 중용하였지만,幕府 타도에 공로를 세운 무사들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게 처리했다. 이에 대한 무사들의 불만이 높아가자 足利氏는 이들 세력을 규합하여 京都를 점령하고,1336년 北朝인 光明天皇을 옹립하여 南朝인 後醍醐天皇과 대립하였다. 南朝와 北朝로 나뉜 두 개의 조정(朝廷)이 약 60년간 대립하면서 전란이 계속된 이 시기를 南北朝時代라고 하는데, 南北朝時代는 3대 将軍 足利義光에 의해 종식되었다.
室町幕府는 재정 기반과 군사력이 약하여 守護大名와 정치적 경제적으로 상호보완 관계에 있는 독특한 체제를 이루었다. 막부는 3대 将軍 義光 이후 어린 将軍 체제가 계속되자 유명 大名들에 의한 합의로 운영되었는데,8대 将軍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막부 내에서 벌어진 大名들의 대립은 応仁の乱과 明応の政変으로 이어졌다.
이후 막부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은 붕괴되어 将軍의 권위가 실추되고 莊園制가 붕괴되었다 그러자 将軍 임명하는 守護大名들도 領国 내에서 통치권과 권위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풍조에서 능력 있는 가신들에 의한 下克上이 빈번하게 일어나 다수의 大名가 몰락하고,지방의 크고 작은 領主들이 일어나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100년 가까이 무력투쟁이 계속되는 戦国時代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조세 압박에 시달린 민중의 一揆도 戦国時代로의 이행을 가속화 시켰다
室町時代에는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실시되고,水車를 이용한 灌漑시설 정비 등의 농업기술 발달과 비료의 발달로 농업생산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수공업과 상공업이 발달하여 상품의 유통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각지에 시장이 생겨났다. 유럽과의 무역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室町時代는 무사문화와 귀족문화의 융합에 서민적인 정서도 가미되어,일본의 전통예능인 能,狂言,茶の湯,生け花 등이 생겨났다.
室町時代에는 불교가 무사와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고,1549년 프란시스코 자비엘에 의해 크리스트교가 전해졌다. 또한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화승총이 전해졌으며,織田信長는 총포를 이용한 戰術로 戦国時代의 전투 양상을 바꿔 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