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の背景函

鎌倉-山本讓二///日本の歴史、中世時代

bsk5865 2015. 7. 28. 08:55

보낸사람 : 소담 엔카 운영자 15.07.28 06:24

 

鎌倉-山本讓二///日本の歴史、中世時代(D)|★....演歌 게시판

黃圭源 |  http://cafe.daum.net/enkamom/KTiH/7589 


鎌倉-山本健二


鎌倉-山本健二

作詞 芳賀矢一 作曲 不詳 文部省唱歌


七里ヶ浜(しちりがはま)の磯づたい
稲村ヶ崎(いなむらがさき)名将の
剣(つるぎ)投ぜし古戦場


極楽寺坂(ごくらくじざか)越え行けば
長谷観音(はせかんのん)の堂近く
露坐(ろざ)の大仏おわします


由比(ゆい)の浜辺を右に見て
雪の下道(したみち)過ぎ行けば
八幡宮の御社(おんやしろ)


上(のぼ)るや石のきざはしの
左に高き大銀杏(おおいちょう)
問わばや遠き世々(よよ)の跡


若宮堂(わかみやどう)の舞の袖
しずのおだまきくりかえし
返せし人をしのびつつ


鎌倉宮(かまくらぐう)にもうでては
尽きせぬ親王(みこ)のみうらみに
悲憤の涙わきぬべし


歴史は長き七百年(しちひゃくねん)
興亡すべて夢に似て
英雄墓は苔むしぬ


建長(けんちょう)円覚(えんがく)古寺の
山門高き松風に
昔の音やこもるらん


日本の歴史、中世時代


 

鎌倉時代(かまくらじだい) 室町時代(むろまちじだい) 중세시대라 한다.

 

鎌倉時代 1192 源頼朝(みなもとのよりとも) 鎌倉 근거지로 幕府(ばくふ) 설치하고 1333년에 막을 내릴 때까지를 가리킨다.

 

1185 동생인 源義経(みなもとのよしつね) 壇ノ浦(だんのうら)에서 다이라 일족을 물리친 頼朝 천황에게 守護(しゅご) 地頭(じとう) 임명권을 얻어 관리를 () 막부 성향으로 교체해 자신 御家人 세력을 강화하였다 막부의 행정은 御家人(ごけにん) 담당했으며将軍(しょうぐん) 御家人 중에서 守護(しゅご) 地頭(じとう) 임명하고대신 御家人 将軍에게 충성을 바치는 봉건적 주종관계를 형성했는데이것이 鎌倉幕府 지배 근본이 되었다.

 

 

 

1189 義経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頼朝 義経 토벌하고1192 征夷大将軍(せいいたいしょうぐん) 되어 鎌倉幕府 세웠다. 鎌倉幕府 중앙의 귀족들인 公家(くげ) 정권과 양립 체제를 이루는 독립적인 정권을 창출했다 그러나 3 将軍 암살되어일족의 정통이 단절되면서외척인 北条(ほうじょう)일족이 執権(しっけん)정치를 실시하게 되었다.이에 13세기 정권 회복을 위해後鳥羽上皇(ごとばじょうこう) 막부 타도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막부는 황위 계승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세력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1272년과 1281 번에 걸친 원나라의 침략에 대처하느라 재정이 악화된 막부는 출정한 御家人에게 제대로 보상을 내리지 못해 무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또한 北条(ほうじょう)가에서 御家人 등용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무사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결과적으로 황위 계승에 개입하던 막부가 後醍醐天皇(ごだいごてんのう) 형에게 황위를 계승하는 것을 인정할 없다는 결론을 내놓자이에 반발한 後醍醐天皇 막부에 불만을 품고 있던 足利尊氏(あしかがたかうじ) 손을 잡고 군사를 일으켜 鎌倉幕府 멸망시켰다.

 

鎌倉문화는 무사와 서민 중심으로 소박하고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란을 중심으로 軍記物語(ぐんきものがたり) 歴史物語(れきしものかたり) 등이 등장한 것도 시기이다 대표적인 군담소설에는가문의 흥망을 그린 平家物語(へいけものがたり) 있다. 또한 鎌倉불교의 성립으로 불교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鎌倉時代에는 농업기술도 발달하여벼를 수확하고 보리를 재배하는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소와 말을 농사에 이용했으며비료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室町時代 14세기에서 16세기로1338 足利市(あしかがし) 京都 室町幕府 幕府 세우고 통치한 것에서 명명되었다.

 

鎌倉幕府 무너뜨리고 公家 무사를 통일한 後醍醐天皇 公家 중용하였지만,幕府 타도에 공로를 세운 무사들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게 처리했다. 이에 대한 무사들의 불만이 높아가자 足利氏 이들 세력을 규합하여 京都 점령하고1336 北朝(ほくちょう) 光明天皇(こうみょうてんのう) 옹립하여 南朝(なんちょう) 後醍醐天皇 대립하였다. 南朝 北朝 나뉜 개의 조정(朝廷) 60년간 대립하면서 전란이 계속된 시기를 南北朝時代(なんぼくちょうじだい)라고 하는데, 南北朝時代 3 将軍 足利義光(あしかがよしみつ) 의해 종식되었다.

 

室町幕府 재정 기반과 군사력이 약하여 守護大名(しゅごだいみょう) 정치적 경제적으로 상호보완 관계에 있는 독특한 체제를 이루었다. 막부는 3 将軍 義光 이후 어린 将軍 체제가 계속되자 유명 大名(だいみょう)들에 의한 합의로 운영되었는데,8대 将軍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막부 내에서 벌어진 大名들의 대립은 応仁(おうにん)(らん)明応(めおう)政変(せいへん)으로 이어졌다.

 

이후 막부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은 붕괴되어 将軍의 권위가 실추되고 莊園制(しょうえんせい)가 붕괴되었다 그러자 将軍 임명하는 守護大名(しゅごだいみょう)들도 領国(りょうごく) 내에서 통치권과 권위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풍조에서 능력 있는 가신들에 의한 下克上(げこくじょう)이 빈번하게 일어나 다수의 大名가 몰락하고,지방의 크고 작은 領主(りょうしゅ)들이 일어나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100년 가까이 무력투쟁이 계속되는 戦国時代(せんごくじだい)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조세 압박에 시달린 민중의 一揆(いっき)도  戦国時代로의 이행을 가속화 시켰다

 

室町時代에는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실시되고,水車(みずぐるま)를 이용한 灌漑(かんがい)시설 정비 등의 농업기술 발달과 비료의 발달로 농업생산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수공업과 상공업이 발달하여 상품의 유통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각지에 시장이 생겨났다. 유럽과의 무역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室町時代는 무사문화와 귀족문화의 융합에 서민적인 정서도 가미되어,일본의 전통예능인 (のう)狂言(きょうげん)(ちゃ)()(いけ)(ばな) 등이 생겨났다.

 

町時代에는 불교가 무사와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고,1549년 프란시스코 자비엘에 의해 크리스트교가 전해졌다. 또한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화승총이 전해졌으며,織田信長(おだのぶなが)는 총포를 이용한 戰術로 戦国時代의 전투 양상을 바꿔 놓기도 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