桜の川-三代沙也可 作詞 麻こよみ 作曲 伊藤雪彦
一 風にこぼれる 花びらが 揺れて流れる 桜川 時の短かさ 移ろいに 心しみじみ せつなくて 振り向けば失くした…夢いくつ
二 水にきらめく せせらぎが 胸に優しく しみ通る 会えば別れる 人の世に 好きで別れた あの人よ 今はただ面影…なつかしく
三 二度と返らぬ 歳月(としつき)は 水の流れの 儚(はかな)さよ たどり着くのは どの海か 心細さに 泣いたって 幸せの明日を…桜川
歸化 韓國人 몽골 金氏,泰國 太氏 2007年 潘基文 UN事務總長이 就任했을 때 韓國人 못지않게 기뻐한 中國人들이 있었습니다. 中國 허난(河南)省 싱양(滎陽)県 판야오(潘窯)村의 潘氏 集姓村 사람들이었습니다. 潘 總長 祖上은 高麗 忠烈王의 아내가 된 元나라 公主를 따라 高麗에 왔다가 金方慶 將軍의 日本 征伐에 功을 세워 崎城(巨濟 옛 地名)府院君에 封해졌습니다. 그는 벼슬을 다한 후 巨濟로 내려가 余生을 보내 韓國 '巨濟 潘氏'의 始祖가 됐습니다.
1995年 '花山 李氏' 宗親會가 베트남을 찾자 베트남 政府는 그들을 베트남 王孫으로 모셨습니다. 花山 李氏 始祖 李龍祥은 베트남 첫 獨立國家의 王族이었습니다. 그는 1226年 베트남에 政變이 일어나자 一族을 배에 태우고 脫出했습니다. 高麗 高宗은 李龍祥이 자리잡은 黃海道 花山의 이름을 따 그를 花山君으로 封했습니다. 李龍祥은 元나라 侵入에 맞서 앞장서 싸워 이에 報答했습니다.
韓國人은 '單一民族'이며 다 같은 배달의 子孫이라고 배우고 이를 자랑으로 여긴 時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大陸이 만나는 地政學的 特性上 우리도 바깥世界와 많은 文化的•人種的 交流를 하고 影響을 받았습니다. 韓國의 286個 傳統 姓氏 가운데 130余 個가 巨濟 潘氏나 花山 李氏처럼 歸化人들의 姓氏입니다. 이들은 三國時代부터 朝鮮時代까지, 中國 日本 몽골 베트남 위구르 아랍 女眞 等 多樣한 곳에서 韓國에 와 서로 섞이고 代를 이으며 함께 韓國史를 일궈왔습니다.
요즘처럼 世界 各地 사람들이 大擧 韓國에 와 定着하는 現狀은 우리 歷史上 前에 없던 일입니다. 2000年 49万 名이었던 駐韓 外國人은 이제 120万 名으로 늘었습니다. 이 中 지난해 韓國으로 歸化한 外國人은 49個國 2万5044名으로 檀君 以來 가장 많았습니다.
歸化 外國人이 늘면서 韓國式 姓과 本을 따라 새로 이름을 짓고 스스로 始祖가 되는 創姓創本이 活潑하다고 합니다. '몽골 金氏' '泰國 太氏' '對馬島 尹氏'처럼 前에 못 보던 姓氏들이 昨年에만 4884個 새로 生겨났습니다. 며칠 前 發表된 스위스 國際經營開發院(IMD) 國家競爭力 順位에서 韓國은 歷代 最高인 綜合 23位를 記錄했지만 '文化的 開放性' 分野에선 58나라 中 52位에 머물렀습니다. 이들 '몽골 金氏' '泰國 太氏'들이 韓國人의 한 사람으로 제대로 자리잡도록 돕는 것은 우리 社會의 健康한 發展을 爲해 必要한 일입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