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머 릿 말

bsk5865 2020. 5. 5. 11:49

머 릿 말

 

양지 바른 곳에 나가 기를 펴고 살아 보지도 못한 내 인생은 그래도 길었다.

 

우리 집은 여러 형제가 같이 살았기에 늘 주위의 주목을 받았고 남에게 "그 놈의 못된

자식"이란 욕은 안 먹고 살았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꼭 지켜야 하기에 오히려 다른

어른 앞에서도 순한 양 (羊)이었다.

또 형제간에도 형을 잘 따랐고 평생 얼굴 붉히는 일은 없었다.

 

성장과정에서 유독 기억이 생생한 것과 사회인이 돼서 겪고 본 일 가운데 남기고 싶은

것을 (우리 집, 문중, 고향) 써 봤지만 누구나 겪는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다.

그렇지만 우리 조상의 삶의 이야기이고 우리를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 만큼 키워 세상에

보내 주었기에 고마운 일이 아닌가?

 

90평생을 살아 본 후에 내 인생을 반추(反芻)정리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용기를

냈다. 그래서 그 동안 모아 두었던 잡다한 습작물(習作物)들을 몇가지 정한 항목별로

분류했다.

 

조기불리 이향팔자(祖基不利 移鄕八字)란 사주(四柱)의 글귀처럼 1983년에 대구로

이향했었고 2001년에 잠시 고향으로 돌아와 새 삶을 시작한 모습들을 이 책의 첫머리

에 담았다.

 

행복의 상징처럼 아쉬움을 남긴 환고향(還故鄕) 8년!  가족과 어울려 즐겼던 생활상(生

活相)을 가족별 사항별로 간추려 수록했지만 그 밖에도 많은 추억들이 태산같이 쌓여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중심으로 그 시대에 겪은 일들을 들추어 봤지만 짧은 생애를 마친 아버지

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못쓴것은 내 무능의 탓이지만 이것이라도 소중히 다루기로 했다.

 

우리 8남매의 이야기는 비교적 많은 것들이 있었으나 너무 방대할것 같아 간추린 것이다.

꼭 후세에 전해 주고 싶은 것만 남기고.......

 

이모작 인생(二毛作 人生)의 서곡(序曲)이 된  대구 살이 1983년을 기점으로 환고향 8년을

제한 긴긴 세월을 나와 내자식 3남매에 관한 것으로 꾸몄다. 되도록 생(生)의 힘을 실어 주는

방향으로 썼으나 아직도 진행형이기에 더 큰 이야기 제목이 나올 듯 한 예감이 든다.

 

90평생을 살아 오면서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고생도 내 인생이기에 내 삶의 궤적(軌跡)

으로 수록했고 이것도 많은 자료중 글을 쓴 공이 아깝지만 과감히 버렸다.

 

해외로 나가본 것은 1997년 동남아 관광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하와이를 다녔으나 그 중

2편의 기행문만 실었다.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2018년 마지막 일본여행이고 "마지막"이란

수식어가 붙어서 아직 까지 마음에 걸려 있다.

 

고향, 문중에 관한 자료도 되도록 많이 수록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않으려는 것이 초심

(初心)인데 그러하지 못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고향의 이력서)

 

내고향 "부랭이"는 오지(奧地)가 아님에도 세상이 오지로 치부해서 그런지 세정(世情)에

어두운 오랜 세월을 사신것 같다.

 

그 옛날에도 신학문을 배우는 지금의 학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 집안에서도 형들

과 밤실형님 차득이(종손 寅緖) 몇분이 다닌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중도에 그만 두지 않았다면 후에 공립인 "보통학교"에 입학할 기회가 됐을텐데.....

보통학교를 나왔다면 그 생활에 많은 변화가 왔을수도.....

 

그래서인지 내 고향 부랭이는 개화바람은 늦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늘 어두워 고풍만

답습 해오시다가 뒤떨어졌다.

 

광복 후 반세기를 지나 변화된 현대에 이르러서도 "부랭이"는 이상하게 시류 (時流)에 따라

가지 못하고 낙후의 길을 걸어왔다.

농촌개혁정책에서 소외 (疎外)되어 뒤떨어진 서름이 이어졌었고,

마을 복지시설이란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이렇게 낙후된 고향을 버리고 대구로 이향하여 이모작 인생(二毛作 人生)의 가시

밭길을 가노라고 다른 생각은 할 여유도 없는 세월은 18년이나 흘렀다.

 

그러다가 환고향(還故鄕..고형으로 돌어옴)의 꿈의 실현이 2001년.......그로 부터

8년은 최고의 행복을 누렸지만 동시에 그 슬픈 종말의 씨앗도 함께 뿌려졌다. 

 그 씨앗의  열매는 쓰고 평생의 독이 됐다.

 

그것은 행정의 소외지였던 이 곳에 난데없이 "전원(田園)마을"을 조성한다고 전국

으로 홍보를 관 (官)에서 했었고, 주민들도 이를 반겨 장단 맞췄는데 꿈에서

깨어 보니 "전원마을"은 흔적도 없고, 고향만 사라진 개꿈이 됐다.

이렇게 고향을 잃은 원죄(原罪)의 세대(世代)가 됐고 속죄(贖罪)의 길도 없었다.

 

이럴 어떻게 하나!  300여년전 개척선조 (開拓先祖)의 노 (怒)하심을.....

자초(自招)해서 실향민 (失鄕民)이 된 민낯을....

훗날 우리 후손들이 실향의 씨를 뿌린 지금 세대를 뭐라고 힐책 (詰責)할까?

그것이 두렵고 고개를 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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