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사라졌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것이 아니라 가 봐도 고향의 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는 남의 것으로 변형됐다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고향이 그렇게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고향이란 그 고을에 재물을 묻어 두었던 사람만의 것은 물론 아니다.
삶을 위해 객지에 나가 있어도 누구나 가슴 깊이 고향은 스며있다. 그런것을 어떻
게 소홀이 다룰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런 문제들을 심사숙고 없이 젊은이 하는대로 보고만 있었으니 내 스스로도 한
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떤 연유(緣由)를 들어도 핑계일뿐이다. 입이 열개
라도 낯 뜨거워 할말이 없다. 지난 뒤에 이런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나.. 그건 텅
빈 가슴에서 나오는 공허한 헛소리로 들릴뿐이다.
또한 당국의 처리도 매끄럽지 못했었다. 이 고을을 전원도시로 가꾼다는 청사진
대로 추진했다면 쫓겨나지는 안했을것이고 모든것을 지키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렇게 못한것엔 입다물고 보상해 줄것 다 해 줬으니 된것 아니냐? 는 식의 그
태도도 비정상적이다. 그 들의 속 사정이야 민초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당국의 당초계획에 차질이 생긴 눈치를 일찍 알아차리고 이에 대한 대책을 못
세운 잘못이 우리에게도 충분이 있었다.
그런 곳에 신경을 써보지도 못했고 오직 보상금에만 관심이 집중 그 처리에
몰두하고있었으니까.....
혹 땅을 팔지 못해 초조 애걸하는듯한 태도를 보였다면 거꾸로 그것을 이용한것
아닐까? 전원도시의 건설이야 되든 말든 땅만 팔자고 시작한 것은 정말 아닐터
인데.....
그 뒷 이야기를 이어 주는 사람도 없어졌다.
한편 옛어른들이 지은 고을 이름 "부랭이" 인적(人的) 물적(物的) 모두가 무한대
(無限大)로 불어나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 윤동(潤洞)이라 표기한 뜻이 이제야 이루
어지고 있다고 내심 반기다가 역(逆)으로 크게 낭패를 본 꼴이다.
그저 뜻도 모르면서 따져보지도 못하고 이를 위해 마을 총의(總意)도 그런 것으로
믿고 좋은 것으로만 여겼던 "전원도시"의 꿈에 홀려서 조상 대대로 세거해 온 조기
(祖基)와 우리 삶의 애환이 녹아 있고 나를 있게한 뿌리를.....그리고 출향인(出鄕人)
의 가슴에 깃뜰고 있는 죽어서도 못잊는 고향산천의 모습을 잔인하게 빼았아버린
못난짓을 저질러 버렸다.
이제와서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 그때를 살고 있었던 내 탓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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