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농(富農)의 억척! 최(崔)실이
아주 아득한 옛날...봉화서 교육청 행사에 최실이가 봉성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원피스 차림으로 독창을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봉화에 있었고
김선생인지? 인솔하고 봉화학교에 예행연습차 왔었다. 내가 반주하고 연습했었
지...참 똑똑하고 야무진 인상을 지녔지만 순진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어느듯 성년이 되어 우리 외손의 중매로 최씨 집성촌인 경주최씨집으로 출가
했다. 내가 봉화서 살때는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대구로 떠난 후엔 큰일이
없으면 못 만났었다.
그러다가 부랭이로 잠시 거처를 옮겨 있을때 내왕이 많아 반가왔고 고향 피붙
이들이 그리워 같이 어울려 한 세월 행복하게 잘 보냈었다.
일할때도 놀때도 모두 적극적인 성격이기에 모임이 있을때는 늘 앞장 서서 준
비하고 마무리까지 몸을 아끼지 않았었다. 이렇게 여럿을 위해주니 일행중 제
일 큰 호사가(好事家)로 모두가 좋아했었다 .또 분위기를 띄우는 일은 일가견
(一家見)이 있어 주위의 인기를 독찾이 했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문전옥토(門前沃土)가 좀 외진 곳에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갖출것은 모두 갖추
고 아쉬운것 하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장했고 또 나눌줄 아는 인정에 늘 고
마왔다는 생각이 아직 남아 있다.
박씨집 두째 딸로 태어나 본래 천성이 착하고 자주성이 강했고 악착같은 근
면성도 있어 주야로 메달린 그 많은 농사일과 과수원에서 획기적인 소득향상
에 성공했었다. 한 때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그 제자
리를 뛰어넘어 자족부농(自足富農)으로 바꾸어 놓았다. 누구나 한다고 되는 일
도 아니며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일구어 낸 성과라고 생각되어 가상
한 일이다. 박씨집의 억척같이 강인한 딸이라고 칭찬을 들을만한 했었다. 장하다.
이제 부터는 최서방과 함께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넘었다. 살아 온 세월 보다
남은 세월이 훨씬 더 아름다와야함은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도 중요하지
만 내 몸도 같이 중요하기에 무리가 없도록 조심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길 진심으
로 바란다.
나의 일생에서 함개 했던 시간이 아름답기에 나도 많은 행복을 누렸었다.
최실아! 고마왔다. 너는 부랭이 반남박씨 집안의 장한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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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 치대 합격
낳구나 ! 등천(登天)할 용이 낳다.
이제 까지 앞만 보고 고생하며 살아 오다가 한숨 돌려 허리 펴고서는 이웃도
살피고 베풀고 살아왔기에 인과응보(因果應報)로 이런 일도 찾아 왔다.
최실아! 잘 됐다, 정말 잘 됐다.
한참 기다리면 손자가 의사가 되어 할머니의 건강을 챙겨줄 복(福))이 영글었다.
축하한다..... 2016,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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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실아! 최서방 경운기 사고로 입은 상처치료에 고생 많았다. 나는 늙었다는 핑게
로 문병도 못해 죄스런 마음 비길데 없다. 그래도 이 늙은이 잊지 않고 문안전화도
하고, 가끔은 용돈도 보내주는 마음을 염치없이 받기만 하고 살아 왔다.
고맙고 행복했다.............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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