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108

무작정 상경경험(上京經驗)

무작정 상경경험(上京經驗) 해방 ! 세상이 무질서 속에 곤두박질 칠때 비정상이 정상 보다 더 통할 수 있었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일수록 생존수단은 비상하여 순진한 촌놈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혼란기를 겪었다. 어제까지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서울 어느 대학 예과에 혹은 서울 유명 고교로 자리를 잘도 옮기고....누군 어디에 취직했다고... 한편 사상에 물든 친구는 알아 들을 수 도 없는 좌파 이론에 열을 올려 펼치고.... 이 어수선한 세상 분위기를 타고 등록금 내고 이름만 올려 놓아도 졸업장 따는 수도 있다고?...... 취직 하고 보니 한때 조회도 안되는 만주 어느 대학, 일본 중국....이런 것들이 한때는 통했었다. 지금이야 모두 정리됐겠지만..... 나도 세상 분위기에 들떠 서울의 인연을 찾아가 본일..

回顧輯草案 2021.10.14

갑술생 숙질(甲戌生叔姪)

갑술생 숙질(甲戌生叔姪) 우리 집엔 갑술생 동갑내기 숙질이 같이 컸었다. 나와는 4살차 이지만 어릴때는 많은 연차(年差)를 느꼈었다. 80 을 너머 같이 늙어 가고 있는 지금은 아니지만.... 장조카 보다 동생이 측은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 일찍 여의고 모든일 형을 의지 해야 했으니.....형들도 자식이 크고 있고.....들어 내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마음도 늘 그랬을 것이다. 구민학교 입학할때도 시험을 받던 시절, 그때 교장이 데우라(出浦)라는 일본인이었는데 "내 동생과 조카도 입학시험 본다"고 말한적이 있다. 내 학교 성적이 좋은 편이니 숙질도 좋을 것이라는 암시와 청탁형의 서툰 표현인듯한 어릴때의 추억이다. 일제시대에 입학해서 4학년때 해방을 맞아 다시 우리 한글로 공부한 세대다. 중학교가 ..

回顧輯草案 2021.10.13

마지막 본 세째 누님

마지막 본 세째 누님 창평(昌坪)으로 누님이 출가할 때는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때였다. 자주 찾아가서 자고 오기도 했었다. 신혼부부가 기거하는 아랫채 그 방에서....철이 없기로서니.... 대구 무태(無怠) 김녕김씨(金寧金氏) 집안이었던 사장 어른 내외분도 큰사형 내외분도 생질의 4촌도 아직 그 얼굴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때 밤이면 전깃불이 꽃밭을 이룬 부럽던 다덕광산(多德鑛山)이 일터였고 일제시대 였기에 일본어를 잘 했었다. 자형은 힘이 장대하여 면내 채XX씨와 함께 씨름 대표선수 이기도 했었다. 일제 말기에 다덕광산이 폐광되더니 지방 경기도 사라지고 해방을 맞고서는 생활터전도 바뀌었다. 누님집도 분가했고 사장어른도 돌아가시고.....어릴 때 그런 추억만 안고 세월은 흘렀다. 집의 세째형과 자형은 같은..

回顧輯草案 2021.10.13

한곳에 출가한 누님,그리고 외손들

한곳에 출가한 누님,그리고 외손들 자매가 한곳에 만나 살고 있으니 세상에 흔한 일은 아니다. 어릴 때 7살 차이로 자랐지만 성인이 돼서도 한동내로 왔으니 그것도 축복? 이겠지.......... 이에 앞서 큰누님이 출가한 남양홍씨 두곡선생의 후예 집성촌인 띠띠미 (杜洞 두동) 의 가을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내 어릴때의 기억이지만 생전 보지 못했던 산수유와 잘 익어가는 감(枾)이었다. 별천지에 온듯 신기했다. 한약재인 이 산수유가 큰 소득원이었고 다른 곳에는 없는 부존자원인것과 이른 봄 제일 먼저 피는 이 꽃은 온 고을을 노랗게 덮어버리는 장관을 이룬다는 것은 철이 든 후에 알았다. 같은 또래 동갑인 큰 생질과 놀때 이웃에 있던 친구도 사귀고 큰생질 4촌과도 어울 렸으며 그 중 친구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기..

回顧輯草案 2021.10.12

반구사가(盤邱査家),일찍 떠난 우서방

반구사가(盤邱査家),일찍 떠난 우서방 작은 형님은 장수(반구)에 우실이 시집 보내놓고 "보로 간다"고__(사가를 방문하는 일)_ 어느 봄날 장수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새사가에 어른들을 집으로 모시는 것은 오래도록 이어 내려온 풍습이다. 그때 크게 유행했던 것은 봄옷 위에 걸치는 얇은 "바바리코트"....너도 나고 이것 안입고는 출입을 못 하는듯한 때였기에 그것을 사서 나누어 입고 반구를 찾이갔다. 아담한 고가(古家)로 토담집이였는데 대대로 살아 내려온 집인것 같았다. 사가 어른 들과 우서방이 얼마나 극진히 영접해 주는지 참 고마왔었다. 우리 집과 예의 범절이나 사는 모습이 다르지 않아 낯설지는 않았다. 이러한 가풍에서 자란 자식은 어른 대접할줄 아는 소양을 지니고 있어 어디애 있어도 그 처신은 반듯하다..

回顧輯草案 2021.10.12

대구(大邱) 나들이<애석했던 집안 조카>

대구(大邱) 나들이 그로 부터 세월이 흘러 문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1984년 쯤인지 도로공사를 그만 두고 대구에 정착 했었다. 처음엔 주택을 신축해서 입주 했다가 시세사 좋아 팔고 다시 대지를 물색하여 새집을 짓고 정주 했으니 경제적 능력도 대단했고 느긋한 여유를 보였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부랭이 아랫마을 협소한 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넓은 곳에서 날개를 펼쳐 높이 날아가 대도시에서 한자리를 찾이한 보금자리.....자랑할만한 성취에 만족 하지않고 관변단체 에 취업하여 고정수입도 확보하는 생활 능력도 과시 했었다. 이러할 때에 큰형님이 대구 나들이를 하셨다. 그때 나는 법원앞 2층을 얻어 살때였으니 조금은 안정을 찾아서 마음의 여유도 생겼을 때였다. 형님은 평생 혈압관리를 하고 계시기에 저녁상에..

回顧輯草案 2021.10.11

아들로 인한 상심(傷心)

아들로 인한 상심(傷心) 도로공사에 취업하기 전 한때 동내에서 그런 나이에 흔히 볼 수 있는 말썽을 피운 문서는 어른들의 걱정을 끼치기도 했었다. 뜻대로 안되는 세상 원망에 술로 인한 흥분이 이성을 마비시킨 실수지만...... 이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지신 큰형님은 가끔 봉화까지 오시면서 마음을 달래 시기도 하셨고, 집에 오셔서는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주무시기도 했었다. 그때는 아직 약주를 즐기시던 시절...주무시기 전에 약주와 안주(그때는 당면으로 만든 잡채가 유행했고 형님은 즐기시는 음식이라고 하셨다)를 준비해 드리면 이튿날 아침에 보면 다 비우셨고 ......아침 식사를 하시곤 했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괴로움! 술에 의존해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지경에 이르렀..

回顧輯草案 2021.10.11

설날 그리고 먹거리

설날 그리고 먹거리 어릴 때 설날 같이 설레임 속에서 기다려지는 것은 없었다. 설옷 만들고 계시는 어머니 곁에서 좋아서 잠 안자고 지켜 보다가 가서 자라고 꾸중 들은 동심이 그립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그 날 만큼은 그 욕구가 충족되니까.....새옷, 새신, 그리고 쌀밥("이밥"이라고 했다), 설돈, 보는것 들리는것 모두 신나는것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설날의 감회도 차차 바뀌어 갔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형들은 조석으로 찾아 뵙고, 출타 때는 반드시 아뢰고 다녔다. 이렇게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습관이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 왔었다. 설날에는 일직 새옷으로 갈아 입도록 하시고 후에 간단한 주안상 받들고 들어와 며느리와 함께 세배 부터 드렸다. 아마도 차례를 지낸 후에는 바로 할일이 많아 먼저 드리는..

回顧輯草案 2021.10.10

지방유지, 작은 사고, 전화(電化)사업

지방유지, 작은 사고, 전화(電化)사업 작은 형님은 그 동안 인간관계가 좋았고 교류의 폭도 넓어져 봉성면을 움직이는 인물군(人物群)에 합류 지방의 유지로서 그 자리가 굳혀졌다. 반면 그만큼 인사 치례를 해야할 곳이 많아 졌고 처신에도 신중을 기하게 됐다. 대중의 지도급 인사가 된다는 것은 비례해서 사회적 도덕적 책임도 다해야 된다 는 뜻이다. 그리고 좋든 나쁘든 사회적 감투도 받아 써야 했다. 동(洞) 산림계를 위시하여 여러 직함이 따랐고 그때 봉성중학교 설립 기성회 임 원도 맡았다. 봉성면을 막라한 지도급 인사의 친목 모임에도 들어 갔다. 이러한 계층과의 교분을 쌓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도 있어야 하기에 일용잡비의 조달에도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시운(時運)도 좋아 맞아 떨어져 그런지 그 때 나도 힘을 ..

回顧輯草案 2021.10.09

사방사업의 십장(什長)

사방사업의 십장(什長) 사방사업(砂防事業)이란 글자 그대로 민둥산이 많았던 시절, 우선 산사태를 막고 조림(造林)하는 사업을 말한다. 내가 학교 다닐때 일본인 선생이 자기나라의 푸른 산과 우리의 민둥산을 비 교하면서 은근히 자기들의 우월성을 내비취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 원인은 난방 문제가 서로 다른데 기인하며 우리는 온돌이기에....... 작은 형님은 훨씬 젊었던 시절, 한 때 사방사업에 나가기도 했었다. 이 사업은 경사진 민둥산에 계단을 만들어 사태를 막고 나무나 잔디를 심었고 계단이 필요 없는 곳에는 직접 나무를 심었었다. 수종도 여러가지로 오리나무, 아카시아, 소나무, 참나무........아카시아는 번식력도 강하고 꽃도 향기롭고 꿀벌의 밀원이 되기도 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다른 수종이 살 수 없는..

回顧輯草案 202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