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輯草案 108

손자의 야식 출생의 애환(哀歡)

손자의 야식 출생의 애환(哀歡) 아버지의 자매인 우리 고모는 세 분이 [法田법전. 道心도심. 金井금정] 계셨지만 아버지는 혼자이시고 맞집의 종형도 한 분 계셨으나 일찍 돌아 가셨기에 자손이 귀해 이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셨다. 그 때는 어린 아이들 "홍진" 끝에 합병증인 페렴으로 없애는 일이 많았고 우리 집 큰 형님에게도 작은 형님에게도 남자 아이를 "홍진"끝에 없앤 슬픈일을 겪으셨다. 출생 때는 위로 형제가 같이 남자 아이를 출산했기에 그 기쁨이 컸었는데........ 나는 큰 사랑방에서 지냈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이 어린 손자 일찍 보내고 가엽고 섭섭해서 눈물 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여러번 봤었다. 그런 연유를 겪은 뒤 문서는 누구 보다도 조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었다. 어린 문서가 귀여워서 ..

回顧輯草案 2020.04.26

春姬 詩集을 보고

春姬 詩集을 보고' 자랑스러운 춘희야! 잘 있느냐? 인생90의 야윈 몸으로 여름더위를 이기지못해 허우적거리다가 이제야 '시집"잘 받아 봤다는 얘기를 한다. 그 수준이 천양지차로 인해 읽어보아도 터득할 수 없을뿐더러 족탈불급의 경지에 있는 너를 한참 우러러 보게 된다. 곱상한 얼굴에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지닌 너에게 어디에 그런 천부적인 재질이 잠재해 있었더냐? 일찍 그 재질을 알지도 느껴보지도 못했던 윗 어른들이 부끄럽기 한이 없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이를 개척 키워나가 대성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치하와 감탄...어울리는 말도 찾기 힘든다. 2016년 어느날 鶴緖가 전해주는 박사학위 소식 듣고 기뻐서 적어둔 토막글이 있어 이를 옮겨 놓고 치하에 가름코자한다.......2019.9.6. 文學博士 학서편으..

回顧輯草案 2019.09.06

御洞(어동)아제의 追慕(추모)

御洞(어동)아제의 追慕(추모) 우리는 부랭이 산촌에서 농사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누대(累代)를 살아왔다. 내가 아직 어렸을때 다덕(多德)광산이 성(盛)했는데 우리 집안에서 그 광산의 대장깐에서 일한 승태(勝泰)형이 유일했다. .........(일찍 고향 떠나 울진.삼척으로 이거(移居)하신 어른들을 제외하고) 그 보다 앞서 삼종숙(三從叔)인 어동(御洞)아제 (敬緖 조부)는 일찍 출향(出鄕)하여 외지의 문물(文物)을 선험(先驗)하신 우리 고을의 선구자로서 후대의 본보기가 될만 했었다. 우리 집안의 그 연배의 어른들은 숙명처럼 가난하게 농사꾼으로 사시다가 아무런 발전의 자취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 가셨다. 내가 소학교에(1930년대 말) 다니던 무렵 어동아제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신기한 의술을 익혀가지고 ..

回顧輯草案 2019.06.02

16世 文植 碑文

16世 文植 碑文 郡守 潘南朴公 文植之墓 公의 諱는 文植(一名泰植)이며 潘南人이시다. 分派先祖 判官公의 8代孫이며 季派 參判公은 6代祖이시다. 官은 郡守이며 高祖 禦侮公의 두째집 後裔이시고 3代에 걸친 獨子로 1673年生 62歲인 1734年에 他界, 이곳 墓域으로 처음 모셨다. 配位는 漢陽趙氏 父 鍾垈의 女로서 1676年 生 72歲인 1747年 他界 軍糧谷 子坐에 계신다. 子에 嘉善 訥 孫에 嘉善 師德 曾孫에 時道 時雨 時雲 3兄弟의 誕生으로 繁衍의 曙光이 이 고을에 가득했을것이다. 이렇게 先代의 蔭佑로 集姓村을 이루게된 宗中의 光榮이 이에서 비롯됐다. 公의 위 2代의 先山은 榮州에 마련했기에 1715年부터 1994年까지 宗中에서 累代에 걸쳐 來往管理하는 傳統을 남기기도 했다. 公은 先志를 이어받은 이 ..

回顧輯草案 2019.04.12

13世 枝茂 碑文

13世 枝茂 碑文 參議 潘南朴公枝茂之墓 公은 潘南人이며 諱는 枝茂(一名 愛得). 字는 右永.分派先祖 判官公의 五代孫이고 季派 參判公의 長子 敎授公이 祖父이시다. 考位 禦侮公의 次子로 1567年4月16日生 官은 參議이고 1651年8月10日 享年85歲로 他界하셨다. 配位 淑夫人 丹陽禹氏는 父 察訪錫鎬의 女로서 1571年6月17日生 1652年9月15日 享年 82歲를 사시다 가셨다. 子에 혁(火+赤) (一名豊連) 孫에 世基(一名莫奈)는 獨子이시고 以下3代 도 獨子로 내려왔다. 公은 賢閥名家의 後裔로서 世鄕인 榮州에서 鄕儒와 交流하시며 世居 하시다가 沒後에 이 곳 먹골에 모셨으니 부랭이 入鄕에 嚆矢였고 外는 史跡文獻을 保存못해 詳考할 길이 없음을 自愧할 뿐이다. 이로 부터 350餘年이 지난 2019年 4月5日 胄..

回顧輯草案 2019.03.31

변장한 모습 [湖 堂]

변장한 모습 [湖 堂] 호당 12.05.19 07:23 변장한 모습 湖 堂 나를 키워낸 어머니 인 부랭이 고을을 바라본다 살던 잔해까지 말끔히 치워버린 그리움들 구미를 끌지 못하는 반찬 없는 싸늘한 식은 죽 바라보듯 한다 관력으로 망가뜨려 놓은 일 속수무책 어이없이 멍하니 바라본다 띄엄띄엄 옹기종기 모인 그리움이 있어 불끈 힘이 솟아 내닫던 그런 힘이 일가친척에 얽힌 정서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김빠진 맥주를 쏟아버린 것 같다 추억을 묻고 내 정서까지 묻은 것을 뿌리째 뽑혀 버렸어도 언제 그런 일 있었냐고 입 다물어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굴착기 거대한 기계들 고향을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해 어떤 모습으로 요리하려나 천천히 변장한 모습으로 어머님의 치마폭을 재단한다 자연은 변한다 그래도 묻은 정서는 변하지..

回顧輯草案 2016.10.12

脫腸手術을 마치고 (2014,1,24)

脫腸手術을 마치고 偶然히 배꼽밑에 볼록 튀어나온 部分이 있어 皮膚泌尿器科를 찾았다. 醫師가 한눈에 보고는脫腸이란다. 황당하게 들렸으나 說明을 듣고 그럴수 있겠구나 하고 首肯했다. 물론 老衰한 탓으로....... 이젠 手術을 해야겠지만 그러나 내키지는 않아 혼자만 생각하다가 설이나 쇠고 해볼까 했는데 식구들이 알고 여러곳으로 알아 보고 綜合病院에 診療豫約 節次를 밟아놓고 連絡이 왔다. 豫約日 15日 (水曜日).. 水曜日은 福祉館에서 하는 일이 있기에 午後時間은 쉬기로 하고 파티마病院 조해찬科長의 診察을 받았다. 結果는 脫腸!..자세한 이에 對한 說明을 듣고 手術날자를 잡았다. 19日 入院, 20日 手術, 22日 退院...手術所要時間 30分程度이고 費用도 많이 안 든다고 했다. 手術前 諸檢査(피,소변,심전도..

回顧輯草案 2014.01.26

樂生歌詞集을 내면서

樂生歌詞集을 내면서 大邱八公福祉館에서 日語와 노래[演歌]를 배우는 클렆을 만들었다. 老後에 日語를 解讀하는 또레의 친구들이 모여서 餘暇를 즐기는 곳이다. 午前엔 노래방에서 노래를 즐기고 午後엔 會話와 새로운 노래를 배운다.이를 爲해 演歌歌詞集을 만들고 卷頭에 인사말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기에 여기 올려본다. お知らせ (2012.2.29.) 此の本は 長い間 歌ってみた 演歌の 數が 增えると 共に 厚さも ふえて 携帶に 不便だったでしょう. 又 此の集いに 後から 來られた 方も 多いから 此の際 改めて 輕く 歌綴りを 作ることにしました. この歌綴りを 通じて 日本語會話の 實力向上に 一役できるよう 望んで おります. 頑張って 下さい. 此の clubを 作って 下さった 洪先生. この 集いを よく導いて いる 文會長. 金總務. それ..

回顧輯草案 2012.10.07

洞 蹟 碑 文 (2010,1,13,)

내 고향 '부랭이'가 田園마을로 再開發됨에 報償받고 떠나면서 이 고을의 자취를 남기려고 門中總意에 依해 세우기로한 洞蹟碑文이다 洞 蹟 碑 文 이 고을은 반남박씨 판관공 계파(潘南朴氏 判官公 季派)교수공 (敎授公)후예 (後裔)의 집성촌(集姓村)이었다. 300여년전 15世 휘(諱) 世基께서 영주(榮州)를 떠나 여기 '부랭이'에 정착(定着)개척 (開拓)하신 고을이다. 조상의 숨결과 피땀이 베인 곳이며 또한 지금의 우리들을 있게한 유복촌(裕福村) 이었다. 2009년 봉화군이 전원(田園)마을 조성지구로 확정추진함에 따라 마을이 해체되고 팔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개척선조 (開拓先祖)의 유지단절(遺志斷切)을 자괴(自愧)하면서 이향(離鄕)에 앞서 고을의 내력과 '고향 그리는 마음'을 함께 각석(刻石)하여 그 뜻을 후..

回顧輯草案 2011.09.19